1. 현진건, '고향' 전문
🐱 전문부터 감상하라냥~ 나른하다고 식빵 굽지 말라냥!!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 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 말도 곧잘 철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꼬마데 오이데 데스까? - 어디까지 가십니까?”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꾜가 어떠니, 오사카가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소데스까 - 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니상나열취 - 어디 가십니까……” “니싱섬마 - 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어라고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짐승을 놀리는 요술장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쭙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요?”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꾼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요?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 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10년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辛酸, 보기에 사는 것이 힘들고 고생스러운 데가 있는.)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재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이 3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랴. 무슨 행세로 적어도 1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망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중 4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까장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는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했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10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두어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 되는 자가 20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차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고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두마. 눈을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피부가 살지고 윤기가 있어 부드럽고 매끄럽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때려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이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 하면 뭐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현진건, '고향' (1926)
“고꼬마데 오이데 데스까? - 어디까지 가십니까?”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꾜가 어떠니, 오사카가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소데스까 - 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니상나열취 - 어디 가십니까……” “니싱섬마 - 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어라고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짐승을 놀리는 요술장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쭙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요?”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꾼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요?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 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10년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辛酸, 보기에 사는 것이 힘들고 고생스러운 데가 있는.)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재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이 3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랴. 무슨 행세로 적어도 1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망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중 4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까장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는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했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10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두어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 되는 자가 20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차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고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두마. 눈을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피부가 살지고 윤기가 있어 부드럽고 매끄럽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때려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이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 하면 뭐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현진건, '고향' (1926)
수능 특강 해제
이 작품은 ‘그의 얼굴’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제목을 바꾼 소설로, 일제의 수탈 때문에 농촌 공동체가 황폐해진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서술자인 ‘나’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그’의 얼굴이 일제 강점기에 고통받는 조선 민중의 전형적인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에게 연민과 동정,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극적인 사건의 전개나 인물 간의 갈등 관계가 두드러 지지는 않지만, 액자식 구성을 통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이 소설은 결말 부분에 신민요를 삽입하여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주제
일제 강점기 조선 민중의 참혹한 삶에 관한 폭로
전체 줄거리
‘나’는 대구발 서울행 기차에서 기이한 옷차림과 행동을 보이는 ‘그’와 우연히 함께 앉게 된다.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외면하려 하지만, 일제의 식민 지배로 고향에서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시작된 ‘그’의 파란만장한 유랑 생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먼 객지에서 부모님을 잃고 떠돌다가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예전에 자신과 혼담이 있었으나 부모에 의해 유곽에 팔려 가고 말았던 여인을 다시 만나서 들은, 비참한 그녀의 인생 이야기도 ‘나’에게 들려준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일제에 대한 분노와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며,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같이 부른다.
2. 현진건, '고향' 작품의 의미 및 표현 방법
🐱 정답 확인 방법은 PC는 마우스 올리라냥~ 모바일은 젤리로 터치하라냥~ 젤리 없냥?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을 매우 흥미 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 말도 곧잘 철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꼬마데 오이데 데스까?(어디까지 가십니까?)”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꼬가 어떠니, 오사카가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소데스까(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니상나열취(어디 가십니까)……” “니싱섬마(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어라고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훌륭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쭙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요?”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요?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 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10년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재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이 3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랴. 무슨 행세로 적어도 1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망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중 4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까장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는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했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뮌기오, 고향이 .”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10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두어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구마.”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 되는 자가 20원을 받고 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차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고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두마. 눈을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때려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이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 하면 뭐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현진건은 1900년 8월 9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1943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난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호는 빙허이며, 근대문학 초창기에 사실주의적 단편소설의 형식을 발전시킨 작가로 평가된다.
• 일본에서 수학한 뒤 중국 상하이의 후장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19년 귀국한 뒤 문학 활동과 언론 활동을 병행하였다. 1920년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했고, 이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불」, 「고향」 등을 통해 식민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지식인과 하층민의 궁핍, 사회적 모순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장편으로는 『적도』와 『무영탑』 등이 있다.
• 초기에는 가족과 개인의 생활을 소재로 식민지 현실의 폐색과 근대 지식인의 무력감을 보여 주었고, 이후에는 객관적 현실과 사회적 문제를 작품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운수 좋은 날」과 「고향」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인 생활 장면으로 제시하면서 사회 구조의 문제를 드러냈다.
•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현실에 대한 관찰력을 키웠으며,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여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의 작품 세계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의식과 민족주의적 태도의 변화를 보여 주며, 후기 사회소설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활용해 독자가 현실의 본질을 추정하도록 한 점을 특징으로 설명한다.
• 위키백과의 작가 정보에서도 현진건은 1900년 대구 출생, 1943년 사망한 작가로 소개되며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단편과 중·장편소설을 남긴 것으로 정리된다. 다만 출생일 표기는 자료에 따라 양력·음력 환산 방식에 차이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8월 9일 표기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진건」, 위키백과 「현진건」, 국립중앙도서관 근대문학 자료.
•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의 ㅌㅈ ㅅㅌ과 경제적 지배가 심화되면서 농민층의 생활 기반이 약화되었다.
• 작품 속 동양 척식 회사와 중간 소작인의 등장은 농민이 생산한 수확물이 여러 단계의 ㅅㅈ 관계를 거치면서 줄어드는 현실을 보여 준다.
•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ㅇㄹ하거나 도시와 해외에서 막벌이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 「고향」은 이러한 개인의 이동을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식민지 조선 농민 전체인 ㅁㅈ의 현실로 확대하여 제시한다.
• 작품 후반의 노래는 농토의 변화, 지식인의 탄압, 노인의 죽음, 여성의 유곽행을 ㅂㄹ적으로 제시하면서 식민지 현실의 여러 피해 양상을 압축한다.
• 갈래: ㄷㅍㅅㅅ, 사실주의적 사회소설
• 성격: ㅅㅅㅈㅇㅈ, ㅂㅍㅈ, ㅁㅈㅈㅇㅈ
• 제재: ㄱㅎ ㅅㅅ과 ㅇㄹㅁ의 ㅅ
• 주제: 일제의 ㅅㅌ로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 민중의 ㅂㅊㅎ ㅅ에 대한 폭로
• 시점: ㅇㅇㅇㅇㅇ 시점으로, ‘나’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다.
• 발표: 1926년 『조선일보』에 「그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같은 해 단편집 『조선의 얼골』에 「고향」으로 제목을 바꾸어 수록되었다.
• 어조: ㄷㄷ하면서 ㅂㅍ적인 서술에서 점차 ㅇㅁ과 비통함이 강화된다.
• 특징: ㅇㅈㅅ구성, 사실주의적 묘사, 방언과 외국어의 활용, ㅈㅊㅈ ㄱㄱ, 결말의 민요풍 노래를 통한 주제 집약이 두드러진다.
• 서술자인 ‘나’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사건을 전달하는 ㅇㅇㅇㅇㅇ ㅅㅈ을 활용한다.
• 현재의 기차 여행이라는 외부 서사 속에 ‘그’가 들려주는 과거의 삶이 들어가는 ㅇㅈㅅ ㄱㅅ을 취한다.
• 처음에는 ‘그’를 밉살스럽게 바라보던 ‘나’의 태도가 그의 신세타령을 들으면서 연민과 공감으로 변화하는 ㅌㄷ ㅂㅎ가 나타난다.
• ‘그’의 얼굴과 표정, 몸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고난이 육체에 남긴 흔적을 드러내는 ㅅㅅㅈ ㅁㅅ가 사용된다.
• 경상도 방언을 대화에 활용하여 인물의 출신과 생활 배경을 드러내는 ㅂㅇ의 효과가 나타난다.
• ‘그’의 개인적 사연에서 출발하여 마지막에는 ‘비참한 조선의 얼굴’이라는 의미로 확대하는 ㅅㅈㅈ ㅎㅈ이 이루어진다.
• ‘고향’은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뜻하며, 작품에서는 그것이 사라진 ㅅㅅㅇ ㄱㄱ으로 나타난다.
• 결말의 노래는 ‘~고요’가 반복되는 ㅂㅂ 구조를 통해 민요풍의 리듬을 형성한다.
• 전토와 신작로, 친구와 감옥소, 노인과 공동묘지, 여인과 유곽을 대응시키는 ㄷㄱ적 배열이 나타난다.
•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와 같이 대상을 이어 제시하는 ㅇㄱ가 폐허의 정도를 강조한다.
•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는 폐허를 무덤과 해골에 빗댄 ㅈㅇ 표현이다.
•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는 같은 표현을 되풀이하여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는 ㅂㅂ이다.
•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공동체의 붕괴까지 함축하는 ㅅㅈ적 표현이다.
• 작품 전체에서 개인의 사연이 점차 사회 전체의 비극으로 확대되는 ㅈㅊ적 구성이 나타난다.
• 마지막 노래는 여러 인물과 공간의 비극을 짧은 행에 압축하여 제시하는 ㅇㅊ의 효과를 낸다.
• ‘나’의 태도가 ‘그’에 대한 ㅂㄱ에서 ㄱㄱ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그 계기를 파악하는 유형
• 동양 척식 회사, 중간 소작인, 역둔토 등의 소재가 식민지 농촌의 ㅅㅌ ㄱㅈ를 드러내는 방식을 파악하는 유형
• 고향의 폐허, 부모의 죽음, 유랑, 옛 혼인 상대의 비극을 연결하여 ㅇㄱ ㄱㄱ를 파악하는 유형
• 결말의 노래에 나타난 표현과 각 행의 대응 관계를 통해 작품의 ㅈㅈ ㅇㅅ을 파악하는 유형
•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액자 구성이 독자의 ㅊㄹ을 유도하는 효과를 파악하는 유형
• EBS 및 수능형 학습에서는 ‘고향’의 핵심을 단순한 향수의 문학으로 읽기보다 식민지 현실 속 ㄱㅎ ㅅㅅ과 공동체 붕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의 개인적 경험과 ‘나’의 관찰을 구분하고, 후반부에 ‘그’의 얼굴이 조선 민중 전체의 모습을 상징하게 되는 ㅎㅈ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 「운수 좋은 날」과 함께 읽으면 식민지 현실 속 하층민의 궁핍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방식의 ㄱㅌㅈ을 비교할 수 있다.
• 「빈처」는 경제적 궁핍과 지식인의 삶을, 「술 권하는 사회」는 식민지 현실 속 지식인의 무력감을 다루므로 「고향」과 함께 현진건의 ㅎㅅ ㅇㅅ 변화를 살펴보기에 적절하다.
• 김유정의 「만무방」 등 농촌 현실을 다룬 작품과 비교하면 농촌 공동체의 경제적 몰락과 농민의 ㅇㄹ이라는 문제를 비교할 수 있다.
• 염상섭의 「만세전」과 함께 읽으면 식민지 조선의 사회 현실과 개인의 경험이 작품 속에서 ㅅㅎ ㅂㅍ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현진건 「고향」: 1926년 공표 작품 및 원문 자료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진건」: 작가의 생애, 작품 세계, 「고향」의 문학사적 의의 참고.
• 국립중앙도서관 근대문학종합목록: 1926년 현진건 『조선의 얼골』 수록 및 당시 문학 자료 확인.
•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고향』에서 『조선의 얼굴』로」: 작품의 제목 변화와 일본어 번역 및 서술 방식 연구 참고.
• 현진건, 「그의 얼굴」, 『조선일보』, 1926. 1. 3.
• 현진건, 「고향」, 『조선의 얼골』, 글벗집, 1926. 이미지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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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그: 고향을 잃고 떠도는 농민, 식민지 조선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
🔸기이하게 뒤섞인 옷차림은 그의 유랑과 불안정한 삶을 암시하며, 세 나라 사람이 함께 있는 기차 공간은 식민지 현실을 드러내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고꼬마데 오이데 데스까?(어디까지 가십니까?)”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꼬가 어떠니, 오사카가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소데스까(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니상나열취(어디 가십니까)……” “니싱섬마(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어라고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정답
🔸그의 과도한 수다와 외국어 사용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외국어의 삽입과 대화 장면을 통해 인물의 유랑 생활과 문화적 혼종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마치 훌륭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쭙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정답
🔸‘나’는 처음에 그를 수다스럽고 밉살스러운 사람으로 판단한다.
🔸‘짐승을 놀리는 요술장이’는 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나’의 시선을 보여 주는 직유법이다.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정답
🔸그는 ‘나’를 동행자로 받아들이며 친근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나’는 거리를 둔다.
🔸두 인물의 심리적 거리는 작품 후반의 공감과 연민이 형성되는 과정과 대비된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요?”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요?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
정답
🔸막벌이꾼: 안정된 생계 기반을 잃고 노동으로 연명하는 유랑민의 처지
🔸‘나’에게 노동 숙박소를 묻는 장면은 그가 서울에서도 다시 불안정한 노동을 찾아야 하는 처지임을 보여 준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 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10년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정답
🔸그의 얼굴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가난과 고통이 인간에게 남긴 흔적을 형상화한다.
🔸‘나’의 반감이 풀리는 과정은 관찰자에서 공감하는 인물로 태도가 변화하는 계기이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재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정답
🔸노동 숙박소와 일자리에 대한 대화는 ‘그’의 불안정한 생활을 구체화한다.
🔸‘나’는 자신이 충분히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을 자각하면서 그에 대한 거리감을 조금씩 줄인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나왔다.
정답
🔸‘고향’이라는 말은 이후 농토 상실, 가족의 죽음, 유랑, 옛 혼인 상대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출발점이다.
🔸한숨은 고향이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상실과 폐허의 공간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이 3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해 갔다.
정답
🔸역둔토: 주민들의 생계를 유지하던 농토
🔸동양 척식 회사: 식민지 수탈 체제의 핵심 기관으로 제시됨
🔸쇠진: 농민의 경제적 몰락이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랴. 무슨 행세로 적어도 1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망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중 4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정답
🔸서간도: 고향을 떠난 이주 공간이지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한다.
🔸빈주먹: 이주와 노동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를 상징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은 식민지 농민의 궁핍이 가족 해체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모친까장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는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정답
🔸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가족이 식민지 현실 속에서 완전히 해체되었음을 보여 준다.
🔸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을 잠시 달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했다.
정답
🔸신의주·안동현·일본·규슈·오사카로 이어지는 이동은 ‘그’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 준다.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생계 문제 때문에 귀향과 재유랑이 반복된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뮌기오, 고향이 .”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정답
🔸‘고향이 통 없어졌다’는 말은 단순한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붕괴를 뜻한다.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라는 열거는 폐허의 상태를 강조한다.
“그러면, 아주 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정답
🔸폐농: 농촌의 생산 기반과 공동체가 무너진 상태
🔸‘무너지다 만 담’은 고향의 폐허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소재이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10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두어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정답
🔸‘무덤’과 ‘해골’의 이미지는 마을이 죽음의 공간처럼 변했음을 나타낸다.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의 반복은 상실감과 비통함을 강조한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정답
🔸‘그’의 눈물은 개인적 슬픔을 넘어 식민지 조선 민중 전체의 비참한 현실을 상징한다.
🔸‘그’의 얼굴에서 ‘조선의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 작품의 사회적 의미가 확대된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정답
🔸고향 사람을 단 한 명 만났다는 사실은 공동체의 철저한 해체를 강조한다.
🔸‘침울했다’는 표현은 이어질 옛 혼인 상대의 비극을 예고한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구마.”
정답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는 표현은 고향 사람의 생존 여부보다 그들의 삶이 파괴된 현실을 강조한다.
🔸옛 혼인 상대의 등장은 ‘그’ 개인의 상실과 식민지 여성의 비극을 연결한다.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 되는 자가 20원을 받고 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차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정답
🔸옛 혼인 상대는 가족의 경제적 궁핍과 여성의 상품화가 결합된 피해를 겪는다.
🔸‘그’의 토지 상실과 여자의 유곽으로의 매매는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 식민지 민중의 수탈을 보여 준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고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정답
🔸10년 동안 몸값을 갚았음에도 빚이 남는 상황은 착취 구조의 지속성을 보여 준다.
🔸병들고 늙은 뒤에야 풀려났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 현실을 드러낸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정답
🔸여자 역시 고향에서 가족과 공동체를 잃은 피해자이다.
🔸일본말은 그녀가 새로운 삶을 얻는 수단이라기보다 일본인 집에 머물게 된 경위를 보여 주는 소재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두마. 눈을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때려뉘고 헤어졌구마.”
정답
🔸외모의 변화는 10년 동안 두 사람이 겪은 가난과 고통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는 슬픔이 극한에 이른 상황을 드러낸다.
하고 가슴을 짜는 듯이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 하면 뭐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정답
🔸‘이야기를 다 하면 뭐하는기오’는 말로도 치유할 수 없는 현실의 참혹함을 드러낸다.
🔸‘나’ 역시 ‘그’의 비극에 정서적으로 동참하면서 초기의 냉담한 태도에서 벗어난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정답
🔸술은 두 인물이 공유하는 슬픔과 무력감을 잠시 누그러뜨리는 매개체이다.
🔸어릴 때 부르던 노래는 개인의 추억을 넘어 당시 사회 현실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결말 장치로 이어진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정답
🔸전토→신작로, 친구→감옥소, 노인→공동묘지, 여인→유곽의 대응을 통해 식민지 현실에서 삶의 터전과 사람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압축한다.
🔸반복되는 ‘~고요’의 형식과 병렬적 구성은 민요풍 리듬을 만들면서 비극적 현실을 효과적으로 각인한다.
3. 현진건, '고향' 분석
🐱 열심히 분석하라냥~ 슬쩍 넘기지 말라냥!! 이상한 게 있으면 댓글 남기라냥!
👤 작가의 삶
• 현진건은 1900년 8월 9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1943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난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호는 빙허이며, 근대문학 초창기에 사실주의적 단편소설의 형식을 발전시킨 작가로 평가된다.
• 일본에서 수학한 뒤 중국 상하이의 후장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19년 귀국한 뒤 문학 활동과 언론 활동을 병행하였다. 1920년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했고, 이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불」, 「고향」 등을 통해 식민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지식인과 하층민의 궁핍, 사회적 모순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장편으로는 『적도』와 『무영탑』 등이 있다.
• 초기에는 가족과 개인의 생활을 소재로 식민지 현실의 폐색과 근대 지식인의 무력감을 보여 주었고, 이후에는 객관적 현실과 사회적 문제를 작품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운수 좋은 날」과 「고향」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인 생활 장면으로 제시하면서 사회 구조의 문제를 드러냈다.
•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현실에 대한 관찰력을 키웠으며,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여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의 작품 세계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의식과 민족주의적 태도의 변화를 보여 주며, 후기 사회소설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활용해 독자가 현실의 본질을 추정하도록 한 점을 특징으로 설명한다.
• 위키백과의 작가 정보에서도 현진건은 1900년 대구 출생, 1943년 사망한 작가로 소개되며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단편과 중·장편소설을 남긴 것으로 정리된다. 다만 출생일 표기는 자료에 따라 양력·음력 환산 방식에 차이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8월 9일 표기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진건」, 위키백과 「현진건」, 국립중앙도서관 근대문학 자료.
🕰️ 시대의 특징
•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의 ㅌㅈ ㅅㅌ과 경제적 지배가 심화되면서 농민층의 생활 기반이 약화되었다.
• 작품 속 동양 척식 회사와 중간 소작인의 등장은 농민이 생산한 수확물이 여러 단계의 ㅅㅈ 관계를 거치면서 줄어드는 현실을 보여 준다.
•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ㅇㄹ하거나 도시와 해외에서 막벌이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 「고향」은 이러한 개인의 이동을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식민지 조선 농민 전체인 ㅁㅈ의 현실로 확대하여 제시한다.
• 작품 후반의 노래는 농토의 변화, 지식인의 탄압, 노인의 죽음, 여성의 유곽행을 ㅂㄹ적으로 제시하면서 식민지 현실의 여러 피해 양상을 압축한다.
📌 핵심 정리
• 갈래: ㄷㅍㅅㅅ, 사실주의적 사회소설
• 성격: ㅅㅅㅈㅇㅈ, ㅂㅍㅈ, ㅁㅈㅈㅇㅈ
• 제재: ㄱㅎ ㅅㅅ과 ㅇㄹㅁ의 ㅅ
• 주제: 일제의 ㅅㅌ로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 민중의 ㅂㅊㅎ ㅅ에 대한 폭로
• 시점: ㅇㅇㅇㅇㅇ 시점으로, ‘나’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다.
• 발표: 1926년 『조선일보』에 「그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같은 해 단편집 『조선의 얼골』에 「고향」으로 제목을 바꾸어 수록되었다.
• 어조: ㄷㄷ하면서 ㅂㅍ적인 서술에서 점차 ㅇㅁ과 비통함이 강화된다.
• 특징: ㅇㅈㅅ구성, 사실주의적 묘사, 방언과 외국어의 활용, ㅈㅊㅈ ㄱㄱ, 결말의 민요풍 노래를 통한 주제 집약이 두드러진다.
📝 서술상의 특징과 주요 표현
• 서술자인 ‘나’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사건을 전달하는 ㅇㅇㅇㅇㅇ ㅅㅈ을 활용한다.
• 현재의 기차 여행이라는 외부 서사 속에 ‘그’가 들려주는 과거의 삶이 들어가는 ㅇㅈㅅ ㄱㅅ을 취한다.
• 처음에는 ‘그’를 밉살스럽게 바라보던 ‘나’의 태도가 그의 신세타령을 들으면서 연민과 공감으로 변화하는 ㅌㄷ ㅂㅎ가 나타난다.
• ‘그’의 얼굴과 표정, 몸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고난이 육체에 남긴 흔적을 드러내는 ㅅㅅㅈ ㅁㅅ가 사용된다.
• 경상도 방언을 대화에 활용하여 인물의 출신과 생활 배경을 드러내는 ㅂㅇ의 효과가 나타난다.
• ‘그’의 개인적 사연에서 출발하여 마지막에는 ‘비참한 조선의 얼굴’이라는 의미로 확대하는 ㅅㅈㅈ ㅎㅈ이 이루어진다.
• ‘고향’은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뜻하며, 작품에서는 그것이 사라진 ㅅㅅㅇ ㄱㄱ으로 나타난다.
🎨 운율 및 표현상의 특징
• 결말의 노래는 ‘~고요’가 반복되는 ㅂㅂ 구조를 통해 민요풍의 리듬을 형성한다.
• 전토와 신작로, 친구와 감옥소, 노인과 공동묘지, 여인과 유곽을 대응시키는 ㄷㄱ적 배열이 나타난다.
•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와 같이 대상을 이어 제시하는 ㅇㄱ가 폐허의 정도를 강조한다.
•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는 폐허를 무덤과 해골에 빗댄 ㅈㅇ 표현이다.
•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는 같은 표현을 되풀이하여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는 ㅂㅂ이다.
•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공동체의 붕괴까지 함축하는 ㅅㅈ적 표현이다.
• 작품 전체에서 개인의 사연이 점차 사회 전체의 비극으로 확대되는 ㅈㅊ적 구성이 나타난다.
• 마지막 노래는 여러 인물과 공간의 비극을 짧은 행에 압축하여 제시하는 ㅇㅊ의 효과를 낸다.
📚 주요 출제 유형 5개
• ‘나’의 태도가 ‘그’에 대한 ㅂㄱ에서 ㄱㄱ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그 계기를 파악하는 유형
• 동양 척식 회사, 중간 소작인, 역둔토 등의 소재가 식민지 농촌의 ㅅㅌ ㄱㅈ를 드러내는 방식을 파악하는 유형
• 고향의 폐허, 부모의 죽음, 유랑, 옛 혼인 상대의 비극을 연결하여 ㅇㄱ ㄱㄱ를 파악하는 유형
• 결말의 노래에 나타난 표현과 각 행의 대응 관계를 통해 작품의 ㅈㅈ ㅇㅅ을 파악하는 유형
•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액자 구성이 독자의 ㅊㄹ을 유도하는 효과를 파악하는 유형
🔎 EBS 연계·수능 기출 핵심 및 유사 작품
• EBS 및 수능형 학습에서는 ‘고향’의 핵심을 단순한 향수의 문학으로 읽기보다 식민지 현실 속 ㄱㅎ ㅅㅅ과 공동체 붕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의 개인적 경험과 ‘나’의 관찰을 구분하고, 후반부에 ‘그’의 얼굴이 조선 민중 전체의 모습을 상징하게 되는 ㅎㅈ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 「운수 좋은 날」과 함께 읽으면 식민지 현실 속 하층민의 궁핍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방식의 ㄱㅌㅈ을 비교할 수 있다.
• 「빈처」는 경제적 궁핍과 지식인의 삶을, 「술 권하는 사회」는 식민지 현실 속 지식인의 무력감을 다루므로 「고향」과 함께 현진건의 ㅎㅅ ㅇㅅ 변화를 살펴보기에 적절하다.
• 김유정의 「만무방」 등 농촌 현실을 다룬 작품과 비교하면 농촌 공동체의 경제적 몰락과 농민의 ㅇㄹ이라는 문제를 비교할 수 있다.
• 염상섭의 「만세전」과 함께 읽으면 식민지 조선의 사회 현실과 개인의 경험이 작품 속에서 ㅅㅎ ㅂㅍ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 출처 및 참고 문헌
•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현진건 「고향」: 1926년 공표 작품 및 원문 자료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진건」: 작가의 생애, 작품 세계, 「고향」의 문학사적 의의 참고.
• 국립중앙도서관 근대문학종합목록: 1926년 현진건 『조선의 얼골』 수록 및 당시 문학 자료 확인.
•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고향』에서 『조선의 얼굴』로」: 작품의 제목 변화와 일본어 번역 및 서술 방식 연구 참고.
• 현진건, 「그의 얼굴」, 『조선일보』, 1926. 1. 3.
• 현진건, 「고향」, 『조선의 얼골』, 글벗집, 1926. 이미지 '위키 백과'.
4. 현진건, '고향' 문제
📝 서술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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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가 처음에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점차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시오.
정답
🔸처음에는 그의 수다스럽고 낯선 행동 때문에 [반감]을 품지만, 그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과 신세타령을 들으면서 [연민]을 느끼고 결국 [공감]하게 된다.
2. ‘그’가 고향을 떠나 여러 지역을 전전하게 된 원인을 작품의 내용에 근거하여 서술하시오.
정답
🔸식민지의 [토지 수탈]로 농토를 잃고 가족과 함께 [이주]했으나 정착에 실패했고, 이후 가족의 [죽음]과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계속 [유랑]하게 되었다.
3. 작품에서 ‘고향’이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서술하시오.
정답
🔸고향은 본래 삶의 [터전]이자 [공동체]였지만 식민지 [수탈]로 폐허가 되어 [상실]의 공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4. ‘동양 척식 회사’와 ‘중간 소작인’이 작품에서 수행하는 기능을 서술하시오.
정답
🔸두 소재는 농민에게 이중으로 부담을 지우는 [수탈] 구조를 구체화하여 농민의 [경제적 몰락]과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보여 준다.
5. ‘고향’의 폐허를 묘사하는 장면이 ‘그’의 정서와 작품의 주제에 미치는 효과를 서술하시오.
정답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그’의 [상실감]을 심화하고, 개인의 비극을 [민중] 전체의 [비참한 현실]로 확대한다.
6. ‘그’의 옛 혼인 상대가 겪은 삶의 비극이 ‘그’의 삶과 어떤 공통점을 지니는지 서술하시오.
정답
🔸두 사람 모두 고향을 잃고 [유랑]하게 되었으며, 식민지 현실의 [경제적 궁핍]으로 삶의 기반을 잃고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었다.
7. 작품 결말에 삽입된 노래가 앞부분의 사건들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서술하시오.
정답
🔸노래는 앞서 제시된 농토의 [상실], 지식인의 [탄압], 노인의 [죽음], 여성의 [착취]를 병렬적으로 압축하여 작품의 사회적 주제를 집약한다.
8. 이 작품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이 사용됨으로써 얻는 효과를 서술하시오.
정답
🔸‘나’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그’의 삶을 듣고 전달하게 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면서도, ‘나’의 [태도 변화]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고 현실의 의미를 [추론]하게 한다.
9. ‘그’의 얼굴에 대한 묘사가 작품 전체의 의미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서술하시오.
정답
🔸고난으로 늙고 상한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개인의 [고통]을 형상화하고, 마지막에는 그것을 [조선 민중]의 [상징]으로 확장한다.
10. 결말의 노래에서 나타나는 행의 배열 방식과 반복 표현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을 서술하시오.
정답
🔸각 행을 서로 대응시키는 [병렬]과 ‘~고요’의 [반복]을 통해 식민지 현실에서 나타난 [삶의 파괴]를 압축하고 [비극성]을 강조한다.
📝 객관식 문제
🐱 정답 선지 클릭하라냥! 오답이 나오면 다시 풀 수 있다냥! 컨닝하지 말라냥!!*
1. 윗글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서술자가 모든 인물의 내면을 직접 파악하여 사건을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② 현재의 만남 속에서 과거의 사연을 듣는 방식으로 인물의 삶을 제시한다.
③ 서로 다른 인물들의 논쟁을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사회적 갈등을 드러낸다.
④ 외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제삼자 서술자가 모든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록한다.
⑤ 사건을 발생 순서대로만 배열하여 시간의 역전을 배제한다.
2. ‘나’의 태도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처음부터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 한다.
② ‘그’의 사연을 들은 뒤에도 처음의 냉담한 판단을 유지한다.
③ ‘나’는 낯선 행동에 거리를 두다가 그의 고난을 접하면서 정서적으로 가까워진다.
④ ‘나’는 ‘그’의 유랑 생활을 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판단한다.
⑤ ‘나’는 대화가 끝난 뒤 ‘그’와 계속 연락하기로 약속한다.
3. 다음 중 작품에 나타난 ‘고향’의 기능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 것은?
① 유랑의 피로를 회복하는 안식처의 기능을 중심으로 한다.
② 인물의 어린 시절 추억을 환기하는 개인적 공간으로 한정된다.
③ 도시와 대비되는 풍요로운 농촌의 이상향으로 제시된다.
④ 공동체의 삶이 파괴된 모습을 통해 민중의 고향 상실을 드러낸다.
⑤ 인물의 현재 생활과 무관한 배경으로 기능한다.
4. 다음 중 작품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그’의 가족은 고향에서의 생활 기반을 잃은 뒤 서간도로 이동한다.
② ‘그’는 타국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생계를 이어 간다.
③ ‘그’는 일본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다.
④ ‘그’는 일본에서도 노동하며 여러 지역을 떠돈다.
⑤ 귀향은 고향의 폐허와 옛 인연의 비극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5. ‘동양 척식 회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농민이 경작하던 토지가 식민지 수탈 구조에 편입되는 계기로 제시된다.
② 농민의 자립적인 경작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제시된다.
③ 농촌 공동체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기관으로 제시된다.
④ 중간 소작인의 횡포를 막아 농민의 소출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⑤ ‘그’가 일본으로 이주하게 된 직접적인 교육 기관으로 기능한다.
6. 다음 중 ‘그’의 유랑 생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새로운 지역을 경험하려는 개인적 욕망이 유랑의 가장 큰 원인이다.
② 한 지역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이동한다.
③ 고향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도시 생활을 선택한 결과이다.
④ 부모의 죽음으로 고향에 정착하게 된 이후 일본으로 이동한다.
⑤ 경제적 기반의 상실과 가족사의 비극이 연속적으로 이동을 초래한다.
7. 다음 중 작품 속 ‘눈물’의 의미를 가장 적절하게 이해한 것은?
① ‘그’가 과거의 행복을 떠올리며 느끼는 만족감을 나타낸다.
② 개인의 고통을 식민지 민중 전체의 비극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③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④ ‘나’와 ‘그’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완성하는 장치이다.
⑤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의 시간적 차이를 강조하는 기능에 집중된다.
8. 결말의 노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농토의 변화와 사람들의 비극을 대응 관계로 압축한다.
② 유사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리듬감을 형성한다.
③ 개인의 연애 감정을 중심에 두어 앞선 사건의 비극성을 완화한다.
④ 앞부분에서 제시된 식민지 현실을 압축적으로 환기한다.
⑤ 개인의 삶을 넘어 당대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효과를 낸다.
9. 다음 중 ‘그’의 옛 혼인 상대에 관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족의 보호 속에서 성장하여 안정된 혼인 생활을 이어 갔다.
② ‘그’와 결혼한 뒤 함께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③ 경제적 궁핍과 착취로 삶의 기반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로 제시된다.
④ 고향을 떠난 뒤에도 고향의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한다.
⑤ 경제적 성공을 거둔 뒤 고향으로 돌아와 옛 이웃들을 만난다.
10. ‘고향’의 변화와 관련하여 다음 중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연환경의 변화가 중심이 되어 농촌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보여 준다.
② 외부 변화와 인물의 삶은 서로 독립되어 제시된다.
③ 고향은 인물의 과거를 장식하는 배경으로만 기능한다.
④ 농민의 경제적 몰락과 공동체 붕괴가 공간의 황폐화로 형상화된다.
⑤ 고향의 변화는 ‘그’의 개인적 감정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만 제시된다.
11. 다음 중 작품의 표현상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인물의 외양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삶의 흔적을 형상화한다.
② 경상도 방언을 활용하여 인물의 성격과 출신 배경을 드러낸다.
③ 외국어 표현을 삽입하여 인물의 문화적 혼종성을 보여 준다.
④ 작가의 논평을 직접 길게 제시하여 사회적 현실을 설명한다.
⑤ 노래의 반복적 구조를 통해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집약한다.
12. 다음 <보기>와 작품의 ‘그’를 비교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한 농민은 소작료 부담이 커지면서 더 이상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가족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도 농업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품을 팔며 생활하게 되었다.
보기: 한 농민은 소작료 부담이 커지면서 더 이상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가족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도 농업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품을 팔며 생활하게 되었다.
① 두 인물 모두 생계 기반의 약화가 이동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② 두 인물 모두 새로운 지역에서 토지를 확보하여 생활을 안정시킨다.
③ 두 인물 모두 가족과의 이별 없이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한다.
④ 두 인물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공간에 정착한다.
⑤ 두 인물의 이동은 개인적인 여행 욕구에서 비롯된다.
13. 작품의 제목이 발표 당시와 수록 과정에서 달라진 점을 고려할 때, 제목 변화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그의 얼굴’이라는 제목은 개인의 외모를 중심으로 작품의 의미를 한정한다.
② ‘고향’이라는 제목은 작품을 개인의 연애 이야기로 좁혀 준다.
③ 두 제목은 모두 인물의 개인적 성공을 중심으로 의미가 형성된다.
④ 제목이 ‘고향’으로 바뀌면서 개인의 사연이 공동체의 상실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⑤ 제목의 변화는 서술 시점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
14. 다음 중 작품의 주제 의식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개인의 불행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한다.
② 고향을 떠난 개인이 도시에서 성공하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제시한다.
③ 개별 인물의 비극을 통해 식민지 민중의 구조적 고통을 드러낸다.
④ 고향으로 돌아가면 과거의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중심으로 한다.
⑤ 현실의 모순보다 개인의 낭만적 정서를 강조하여 사회 문제를 배경화한다.
15. 다음 중 이 작품을 현진건의 다른 사실주의적 작품과 함께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운수 좋은 날」과 함께 읽으면 하층민의 궁핍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특징을 살필 수 있다.
② 「빈처」와 비교하면 경제적 궁핍이 개인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③ 「술 권하는 사회」와 비교하면 식민지 현실과 지식인의 무력감이라는 문제를 연결할 수 있다.
④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실의 사회적 문제보다 낭만적 이상 세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⑤ 여러 작품을 비교하면 개인의 삶을 통해 당대 현실을 드러내는 작가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 네 실력이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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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국어 한 공기 독서 한 숟갈: 현진건, '고향'
🎉 축하한다냥! 평균 80% 이상 달성했다냥! 🐱
서술형 점수: 63 / 70
객관식 점수: 6 / 15
전체 점수는: 69 / 85 점입니다.
오답 문제 : 객관식 1,4,5,7,8,9,12,14,15 / 서술형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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