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칙, '강로전(姜虜傳)' 전문
🐱 전문부터 감상하라냥~ 나른하다고 식빵 굽지말라냥!! 장은 편의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원문과 차이가 있음.
1장
「강로전」은 홍립의 일을 적어 세상에 전하고자 쓴 글이다. 강씨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로, 본래 강융(姜戎)의 계통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강씨 집안에는 대대로 이름난 선비가 나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중엽 이후로는 강사상, 강신이라는 분들이 나와 잇따라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높아져 정승과 재상(고위 관직)에 이르렀다. 강신의 아들 홍립은 집안의 명성을 이어받아 글재주를 갖추고, 세상을 업신여겼으나 아직 과거 급제를 하지는 못하였다. 선조 때 정축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 곁에서 시종하며 십여 년을 보냈다. 광해군 때에도 명망 높은 벼슬을 지내며, 다시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뒤 재주를 인정받아 함경남도 병마사로 나아갔고,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마침내 장수와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 이름이 온 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2장
적군이 세 방향으로 쳐들어오자, 세상이 놀라 임금이 피난하시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임금께서는 크게 노하시어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적을 치라 명하셨다. 그러나 출정한 장수들은 머뭇거리며 적에게 화살 한 발 쏘지도 않았다. 홍립은 명을 받아 나가면서 "임금을 구한다"는 명분만 내세울 뿐, 실은 형세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이렇게 의논하였다: 「우리나라는 200여 년간 대국을 섬기며 예의를 갖추어 왔으니, 그 의리는 천하보다도 견고합니다. 이제 임금께서 위태로우시니, 마땅히 온 나라의 힘을 다해 목숨을 바쳐 임금을 구해야 합니다. 진흙 소가 바다에 들어가듯 속수무책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저들은 우리를 물고기 밥으로 만들 뿐입니다.」 이러자 길은 끊기고, 조정은 두 적대 세력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붙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3장
홍립은 군사를 이끌고 강가에 이르렀으나, 물결이 거세어 함부로 건너지 못하였다. 밤에 사람을 보내 적정을 살피게 하였더니, 「사방에 적은 없고, 이미 떠났습니다」라 돌아왔다. 홍립은 믿지 않고 몸소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았더니, 불빛도 연기도 끊겨 있어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강을 건너려 할 때, 한 노인이 말을 붙잡고 말리기를, 「적의 계략을 알 수 없으니 반드시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라 하였다. 홍립은 크게 노하여, 「내가 적과 원한도 없고 앙심도 없거늘, 어찌 나를 해치겠는가?」라 하였다. 결국 듣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그냥 건너기 시작하였다. 군사가 절반쯤 건넜을 때, 복병이 사방에서 일제히 나타나 화살과 돌이 비처럼 쏟아졌다. 홍립은 놀라 간신히 목숨만 건졌으나, 군사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4장
홍립은 패한 뒤 흩어진 병사를 거두어 성으로 돌아와 지키고 있었으나, 적군은 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맹렬히 공격하였다. 홍립은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몸소 병사들보다 앞서 싸워 목숨을 바쳐 나라에 보답하겠다」라 하였다. 이에 성문을 열고 나가 싸우자 적군이 조금씩 물러났다. 해가 저물자 양쪽은 각각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적군이 사신을 보내 권유하기를, 「십만 대군이 쳐들어오니 마치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듯 쉬울 것인데, 이미 정해진 기일이 있거늘 어찌 이처럼 모르는 체하는가?」라 하였다. 홍립은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군량도 떨어져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장수님의 뜻에 따르고자 합니다」라 하였다. 홍립은, 「임금의 명을 기다릴 때까지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겠다」라 하였다. 적군이 다시 와서 홍립을 부르며, 「너희 임금은 이미 북쪽으로 떠났거늘, 누구를 위해 이 성을 지키는가?」라 하였다. 홍립은 대답하지 않았다. 적군이 또 사람을 보내어, 「일찍 항복하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다」라 하였으나, 홍립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5장
홍립은 형세가 위급함을 알고 장수들과 의논한 뒤,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적장은 이를 받아들이고 군사를 물리었다. 홍립은 적장을 만나 두 번 절하고 일어섰다. 적장은, 「너희 나라에 도가 없어서 우리가 쳐들어왔다. 이제 천하의 형세는 대강 알고 있다」라 하였다. 홍립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적장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 임금은 아직 있으나 나라의 형세는 이미 기울었다. 차라리 우리에게 항복하여 함께 부귀를 누리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홍립은, 「임금께서 위태롭다 하시더라도 나라가 아직 망한 것은 아닙니다. 어찌 신하로서 임금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라 답하였다. 적장은 그 말을 듣고 그의 의로운 기개를 높이 여기며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홍립은 간신히 몸을 피해 서쪽으로 달아났다.
6장
홍립은 명나라 군대와 조선군이 패배하자, 이를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였다. 때는 3월 4일 새벽이었다. 도독이 포를 세 차례 쏘자, 대군이 일제히 출발하니 그 기세가 번개 같고 비바람처럼 거셌다. 군사들은 앞다퉈 힘을 다해 쳐들어가고, 강강과 조참장이 앞서고, 유도독이 그 뒤를 잇고, 장도사가 그 뒤를 따랐다. 김응하가 말하기를, 「군량을 싣고 갑옷을 입고 싸우는 것은 평상시의 법도이니, 이제 강적을 맞았으니 마땅히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라 하고, 몸소 앞으로 나아가 진격하도록 이끌었으며, 군사들도 줄지어 따라갔다. 스무 리쯤 가 부령 땅에 이르니, 집들이 비늘처럼 이어져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대군은 부대로 나뉘어 마구 달려들어 약탈을 자행하자, 진영은 흩어져 제 질서를 잃었다.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삼만 기병이 푸른 깃발을 들고 쏟아져나와 들이쳤다. 명나라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김응하는 적병이 매우 많은 것을 보고 진을 펴고 맞서며, 홍립에게 와서 지원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홍립은 태연하게 이르기를, 「너희가 명령을 따르지 않아 이미 군법에 저촉되었는데, 어찌 나에게 구원을 바라는가?」라 하였다. 이어서 우군(오른쪽 군사)에게 명하여 금산 정상으로 올라가, 험한 지세를 이용해 스스로를 지키며 아래서 적진을 내려다보게 하였다.
7장
부하 장수와 명나라 군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립은 결국 적군에게 항복하였다. 적장은 싸움에서 진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탄식하며 이르기를, 「나는 북쪽 사막을 누벼 적을 만나면 반드시 이겼으나, 조선 사람이 이처럼 용감할 줄은 미처 몰랐다. 만약 산 위에 있던 군사들이 힘을 합쳐 와서 도왔다면, 우리 군사는 흩어지고 적에게 패했을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어 먼저 원군을 빼앗고, 그들이 손을 놓고 구경하게 하였으니, 우리가 힘을 모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늘의 복 덕분이다!」라 하였다. 홍립은 자신의 군사를 나눠 산기슭에 진을 치게 하였으나, 단 한 기병도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홍립이 문득 일어나 이르기를, 「김응하 장군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야말로 형세가 알 만하다」라 하였다. 이어서 사자를 보내 이르기를, 「두 나라는 본래 원한이 없으니, 더 이상 백성을 죽일 필요가 없다. 전쟁을 시작할 때 미리 알렸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라 하였다. 홍립은 군관을 보내 적진에 항복의 뜻을 전하였다. 적장은 답하기를, 「화친하자는 뜻은 알겠으나 싸움도 없이 항복하는 것은 믿기 어려우니, 장수가 직접 와서 맹세를 맺어야 한다」라 하였다. 홍립은 부장을 보내는 대신, 스스로 부원수 김경서를 데리고 가서 말 위에서 적장과 절을 나누고, 화친을 맺기로 약속하였다.
8장
적진으로 오십 리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적군의 진영이 들판에 가득 펼쳐지고 군마가 구름처럼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남녀 할 것 없이 활과 화살을 지닌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길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수군거리며, 돌과 흙덩이를 던지며 홍립 일행을 모욕하기를, 「비루한 항복한 오랑캐 놈들, 돌아가는 꼴이 꼴불견이구나!」라 하였다. 김경서는 부끄럽고 분하여 홍립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한 나라의 목숨을 걸고 백년을 살 길을 찾으려 하거늘, 이처럼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적을 보고 먼저 무릎을 꿇으니 끝없는 업신여김을 받는구나. 사내로 태어나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만약 적이 쳐들어온다면, 차라리 맞서 싸워보는 것이 좋겠다」라 하였다. 적진에 들어서자, 관복을 갖춘 사람들이 십여 리에 걸쳐 늘어서 있고, 깃발은 사십 오 리나 펼쳐졌다. 갑옷의 번쩍임은 해를 비추고 칼날의 기운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으며, 말과 병사가 번개처럼 달려 눈이 어지럽고 마음이 두려웠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홍립 일행을 안내해 뜰 아래로 내려가 절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크게 절하자, 적장 만주(또는 적장)가 큰 소리로 꾸짖기를, 「너희는 항복하러 왔으니 항복하면 그만이거늘, 어찌 이처럼 태도가 느릿하느냐!」라 하였다. 홍립은 더 이상 명을 거스르지 않고, 군사들에게 무기를 내리도록 명하였다. 병기들은 한데 모여 산처럼 높이 쌓이자, 적들은 쇠사슬로 서로를 묶어 몰고 갔다. 길 가는 곳마다 조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적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적장은 홍립을 불러들였다. 적장은 홍립을 여러 차례 꾸짖었으나, 홍립은 끝내 굽히지 않았다. 적장은 탄식하며 이르기를, 「조선 사람은 비록 패하였으나, 결코 남에게 굽히는 민족이 아니다!」라 하였다. 적장은 걸어가다가 홍립을 돌아보며 절하고 이르기를, 「먼저 항복하려는 이는 어서 앞으로 나아오라」라 하였다. 홍립은 김경서를 앞세워 함께 나아갔다.
9장
적장은 홍립에게 이르기를, 「내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갈 터이니, 조선이 화친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그 답변을 기다리겠다. 너도 달려가서 조선에 알려, 화친이 성사되도록 하라. 그렇게 되면 너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다」라 하였다. 약속이 정해지자, 적장은 홍립에게 돌아가라 명하며, 「다른 환란은 없을 것이다」라 하였다. 홍립은 몇 기병만 거느리고 압록강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조선에 알리기를, 「적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으니, 어서 항복하라. 거절하면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 전하게 하였다. 홍립은 스스로 생각하건대, 이 형세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김경서와 의논한 뒤, 사람을 보내어 조정에 글을 올렸다. 조정에서는 홍립이 이미 적에게 항복한 것으로 의심하여, 그의 가족을 잡아가두고 군사를 보내려 하였다. 홍립은 이 소식을 듣고 다시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적의 대군이 국경에 이르렀다. 나와 김경서만 겨우 목숨을 건졌을 뿐이다. 일찍 항복하면 화를 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시비 곡직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게 될 것이다」라 하였다. 조정에서는 편지를 받고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놀라 안색이 변하였다. 마침내 박씨를 보내어 항복의 뜻을 전하게 하였다.
적장은 홍립이 글에 매우 뛰어난 것을 보고 인재를 얻었음을 기뻐하며, 문서를 맡겨 처리하게 하고, 미녀를 주어 시집보내고자 하였다. 홍립은 자신이 뜻밖의 만남을 얻었음을 생각하며, 온갖 뜻을 받들어 따랐으나, 딸을 주려고 하자 늙고 병들었다며 사양하였다. 어느 날, 건주 성 안에서 잔치를 크게 열고, 여덟 진영의 장수들을 불러 비단옷을 입히고 줄지어 행진하게 하였다. 이어서 적장의 일가 여성과 아름다운 여인 아홉 명, 그 밖에 미녀 오십 명을 불러 앞에 세웠다. 적장은 그 여인들을 가리키며 홍립에게 이르기를, 「세상에 살아서 서로의 뜻을 알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대와 나는 이처럼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하게 되었으니,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 하였다. 홍립은 그 말을 듣고 저절로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이로부터 적장은 더욱 홍립을 친하고 믿게 되었다.
10장
처음 홍립이 항복할 때 데려온 삼백 명의 식구들은 모두 앞장에 세워졌다. 홍립은 적장에게 말하기를, 「앞선 삼백 명은 모두 용맹하여 싸움에 힘쓰고자 하니, 앞세워 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 하였다. 적장은 크게 기뻐하며 이르기를, 「내일 안뜰에 큰 잔치를 열고,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무기를 지니고 백 개 조로 나뉘게 하라. 우리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적에게 끌려가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라 하였다. 약속이 정해진 뒤, 적장은 물러갔다. 홍립은 한참 동안 말을 아끼다가, 문득 이르기를, 「큰일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라 하고, 밤을 새워 적장에게 몰래 알리기를, 「명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으니, 내일은 경계를 단단히 하여 대비하셔야 합니다」라 하였다. 적장은 그 말을 깨닫고, 군사들을 몰래 복병시켰다. 과연 명나라 사람들이 쳐들어왔고, 복병이 일제히 나아와 적을 크게 무찔렀다.
11장
홍립은 명나라 군사들의 간사한 꾀를 눈치채고 속으로 안타까워하며, 공을 세워 자신의 능력을 보이려 하였다. 어느 날 홍립은 큰소리로 이르기를, 「지금 군사도 강하고 장수들도 용맹하니, 어찌 건주 땅만 차지하려 하십니까?」라 하였다. 적장이 묻기를, 「그대의 말이 지나치지 않은가?」라 하자, 홍립은 대답하기를, 「이 변경은 본래 중국 땅이 아닙니다. 변경에 살며 이 땅을 차지하였으니, 이제 중국은 우리 주머니 속 물건과 같습니다」라 하였다. 김경서는 홍립을 시기하며, 나라를 배신하고 적장의 신임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적장의 말을 듣고 자기도 대답하기를, 「저를 쓰실 곳이 있다면 목숨을 바쳐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적장은 더욱 기뻐하며 홍립을 안으로 불러들여 술을 내리고 아주 기뻐하였다. 김경서는 홍립을 배신하려 하였고, 홍립도 이를 알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성으로 돌아온 뒤, 적장은 홍립을 곁에 두고 김경서는 다른 곳으로 보냈다. 결국 김경서는 도망쳐 배신하고 말았다.
12장
적장은 홍립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재주는 세상에 뛰어나니, 나라를 세운 첫 번째 공신이 될 것이다」라 하고, 자기 일가의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 예를 갖춰 홍립에게 시집보냈다. 홍립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본래 조선에 있을 때는 처자식과 하늘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았으나, 이제 이렇게 살게 되니 고향 집과 무엇이 다르랴!」라 하며, 마침내 귀국하려던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적장 곁에 머물렀다.
13장
갑자년(1624년)에 한윤이 몸을 피해 건주로 와, 홍립을 통해 적장을 만나고자 하였다. 홍립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제가 본래 조선에 있을 때 원한이 깊습니다. 옛날 사람이 병을 이끌고 고을에 들어간 일이 있듯이, 저라고 어찌 그럴 수 없겠습니까? 군사를 청해 조선을 치고자 합니다」라 하였다. 적장은 이르기를, 「그대가 이제 우리에게 돌아오니, 마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라 하고, 한윤에게 매우 두터운 예를 갖추어 대하였다.
14장
홍립은 적장에게 말하기를, 「조선은 천하에서 병법과 활쏘기·말타기 기술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군사도 정예이니, 정벌하기에 마땅합니다」라 하였다. 적장은 대답하기를, 「조선을 정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라 하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홍립이 다시 청하였으나, 적장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15장
병술년(1626년) 가을, 적장은 병을 앓고 싸움에서 패하여 세상을 떠났다. 홍립은 가슴을 치며 크게 통곡하며 이르기를, 「동쪽 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제각기 흩어지니, 앞으로 누가 서로 화해할 것인가!」라 하고, 마침내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16장
정묘년(1627년) 밤, 홍립은 병사를 이끌고 예기치 않게 성을 습격하였으나, 큰 비바람이 불어 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홍립은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옷을 바꿔 입고 도망쳤다. 며칠 뒤 안주에 이르러 항복하고 화친을 청하였으나, 조선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17장
홍립은 길을 떠나 평양에 이르렀다. 황사가 하늘을 덮고 사람들은 바람을 보고 흩어져 달아나, 천 리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 부하가 말하기를, 「이런 세력으로 팔도를 마음대로 누벼도 어려울 것이 없겠습니다」라 하였다. 문득 평양 성 사문에 방문이 붙여졌다. 「팔도도원수 금국대장군 강은, 온 백성과 관리들에게 알린다. 이번 병사를 일으킨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예전처럼 편안히 살라」고 적혀 있었다. 홍립은 처음에는 방문의 내용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며칠이 지나자 온데간데없이 조용해졌다. 홍립은 조선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탄식하며 이르기를, 「부모의 나라를 어찌 배반할 수 있으랴! 이제 적장의 뜻도 이미 다하였으니, 그만둘 때가 되었다」라 하였다.
18장
홍립은 조선에 돌아와 몰래 친정을 찾아뵈었으나, 친척들은 그를 보고도 정을 주지 않고 멀리하였다. 홍립은 크게 통곡하며 이르기를, 「제가 십 년을 이국에서 지내고 다시 고향 집을 찾았으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슬프기만 하다. 친지들에게 물어보건대, 모두 저를 외면하니 어찌하여 이러시는가!」라 하였다. 그중 가엾게 여기는 사람이 이르기를, 「그대는 명문가의 자손이다. 몸은 비록 이국에 억류되었으나 신하의 도리로서 조선과 인연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이제 돌아왔으니, 어찌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라 하였다. 그러나 홍립은 끝내 스스로 슬퍼하며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촛불을 마주하고 홀로 앉아, 눈물이 가득 흘렀다.
19장
이때 홍립의 아내 소씨는 홍립이 조선에 돌아오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뒤따라와 조선에 이르렀다. 한편 조정에서는 홍립을 한성에 가두고, 임금의 처분을 기다리게 하였다. 아내 소씨는 친히 편지를 쓰고, 백 금을 써서 사람에게 부탁하여 홍립에게 전하게 하였다. 홍립이 그 편지를 보니, 분내음이 나고 눈물 자욱이 얼룩져 있어, 그 슬픔이 눈에 선하였다. 홍립은 아내의 정성에 감동하여, 끝내 다시 떠날 뜻을 품지 않게 되었다.
20장
나는 벼슬을 버리고 편안히 지내며, 선조의 신하로서 함부로 옛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첫째로는 스스로를 지키고, 둘째로는 백성을 해로부터 구하며, 셋째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감회를 드러내고 옳고 그름을 밝히고자 하였다. 내가 서쪽으로 향하여 향산에 이르렀을 때, 한 노스님을 만났다. 그분은 총명하고 글을 이해하셨는데, 홍립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해주셨다. 돌아와 그 이야기를 차례대로 정리하여 글로 남겼다. 후세 사람들이 내가 적은 내용이 헛된 말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함이다. 숭정 3년(경오년) 가을, 무언자가 적다.
- 권칙, '강로전'
姜虜傳,序其事以傳。
姜氏,本國大姓,姜戎之謂也。
姜之門間,代出知名士,赫世冠冕。
中葉以來,有曰士尙,曰紳者,繼握科簪,位致卿相。
紳之子曰弘立,承家之烈,挾文墨之技,傲睨一世,猶未省試。
宣廟朝丁丑,中廟登科,出入侍從者十餘年。
至廟朝,不失名宦,歷踐華省者,又十餘年。
以其才馬首,出試咸鏡南道兵馬使,能得其職,身都將相,聲聞于城。
三道入關,勢如破竹,長驅直入,遂到京城。
廟社震驚,乘輿播遷,幾至不測。
天子震怒,檄天下兵討之。
往征者復逗留,無一矢相加遺。
受令出關,以勤王為名,實以觀釁。
朝廷群議,皆以為:
「我國誠事大二百餘年,禮義相親,固於天下。
今上有急,義當悉索敝賦,頓首率萬姓赴難。
泥牛入海,微警妄動,彼其魚肉我也。」
於是路絕,將貳於二虜。
弘立引兵至河上,見水勢浩大,未敢輕渡。
夜使人覘虜,還報曰: 「四野無人,虜已去矣。」
弘立不信,乃自登阜望之,煙火斷絕,益以為然。
將濟,有一老叟,叩馬而諫曰: 「虜情叵測,不可不慮。」
弘立勃然怒曰: 「吾與虜,無怨無讎,何至相害?」
遂不聽,麾兵徑渡。
半渡,伏兵四起,矢石如雨。
弘立大驚,僅以身免,軍中死者過半。
弘立旣敗,收散卒,退保一城。
虜圍之數匝,攻之甚急。
弘立謂諸將曰: 「吾當身先士卒,以死報國。」
乃開門出戰,虜兵稍卻。
會暮,各收兵還。
虜使來說之曰: 「大軍十萬,如拉朽。師期已定,何乃無知。」
弘立默然不答。
諸將皆曰: 「軍食不支,難以久駐。願從將軍之計。」
弘立曰: 「誓當固守,以聽朝命。」
虜復來,呼弘立曰: 「爾主已北,何爲誰守?」
弘立不應。
虜又使人曰: 「若早降,當有大位。不爾,悔無及矣。」
弘立終不顧。
弘立見勢急,乃與諸將議,遣使請和。
虜將許之,遂引兵退。
弘立入見虜將,再拜而起。
虜將曰: 「爾國無道,故我來伐。今天下之事,我已略知。」
弘立俯首不答。
虜將又曰: 「爾主雖在,國事已去。不如歸我,共享富貴。」
弘立曰: 「國君雖失,社稷尚存。豈有為臣子而背其君者乎?」
虜將壯其言,不復強之。
弘立得脫,遂西走。
時三月初四日平明。
都督放砲三次,大軍齊發,勢如雷霆,勞若風雨。
奮進齊擊,江剛繼,祖參將先行,
劉都督次之,張都司又次之。
金應河曰:
「襄粮坐甲,固是常規。今見大敵,可以勇矣。」
遂奮然而前,指揮齊進,亦迤邐而進。
行二十里,到富寧地面,見依山落,櫛比成村。
大兵分隊馳入,分散搶掠,無復隊伍。
黃蓋三萬騎,忽自山谷中突出衝擊。
天兵一時崩潰。
應河見賊兵甚盛,列陣以待,且呼弘立來繼援。
弘立曰: 「爾不聞命,斬爲賊,奚為望救?」
即令右軍,合登金山頂,據險自固,下瞰賊營。
盈哥觀戰敗狀,嘆息良久,曰:
「吾横行漠北,所向無敵,不意朝鮮人勇至如此也。
如使山頭之兵,齊力來助,則吾軍皆散,虜顚連矣。
天祐我,先奪援軍,袖手旁觀,
使我專力,以至得勝,無非我洪福之所致也。」
弘立遺軍,分屯山腳,無一騎呼嘯過事。
弘立忽起曰: 「果然河頭國能消息也。」
卽令出鹿曰: 「兩國初無嫌怨,不須殺虜。
出兵之初,預先走報,已能順否?」
弘立遂遣軍官束明往虜營。
答曰: 「講和之意,未戰而輸,欲見大將,面結盟好。」
盈哥曰: 「非大將不可。」
弘立又進副元帥金景瑞,馬上相揖,約以和好。
未至五十里,見連營彌野,軍馬雲擁。
男女挾弓持箭者無數。
沿途相見,相聚作聲,或擲瓦礫,或投囊塊以辱之曰:
「傖生降虜,之歸靡之不若也。」
景瑞慚慍,謂弘立曰: 「吾等傾一朝之命,換百年之身。
從前受辱,生不如死。
向見虜,先自屈,取侮無窮。
男兒見世,豈不啣愧。
如或虜至,可試與之戰。」
旣入城,全裝冠帶之人,羅列十餘里,旌旗四五十里。
甲光耀日,劍氣干雲,風馳電騁,目眩心怖。
有紅衣人,引入兩廡,令於堦下行禮。
兩人旣長揖,滿住厲聲曰: 「汝以從來,降亦可也。
汝爲降人,敢爾無慢。」
弘立不復違命,麾兵令下。
盡去兵仗,堆積一處,高與山齊。
胡人以鐵鍊相連繫,驅趕前往。
道中多有華彥,離身落淚自絕者。
胡將數日,乃引弘立入。
胡將數責之,弘立不爲屈。
胡將歎曰: 「朝鮮人雖敗,非可屈於人者。」
滿住中路揖之曰: 「欲見先降,可速進來。」
弘立趨景瑞先行。
滿住曰: 「吾將入國,與和不和,待其回報。
汝亦馳告於國,簽和成事,然後可矣。」
事旣定,汝當歸國,保無他也。
弘立獨與數騎,到鴨綠江。
使人馳報: 「虜大至,國可速降。不從,無噍類矣。」
弘立自揣,勢不能免,乃與景瑞相議,遣人馳啓本國。
本國疑弘立已降,拘其家,將發兵。
弘立聞之,復馳書曰: 「虜大軍壓境,吾與金景瑞僅以身免。
若早降,禍猶可解。不爾,玉石俱焚。」
朝廷得書,君臣失色。乃遣朴某,持書乞降。
滿住見弘立文華甚富,深喜得人,委以文書,欲妻以美女。
弘立亦以生遇萬古,曲意順適,無微不從,而至於嫁女,托言老病不救也。
一日,於建州城中設大宴,集八營將,皆衣錦繡,排列而行。
又出諸氏及淑女九人,美女三,五十人,羅列於前。
滿住指諸女而謂弘立曰: 「人生世間,意氣相許,不輕相識者,非丈夫也。君我二人,各相託誠,成為相連,豈非偶然。」
弘立聞其言,不覺感泣。由是滿住益親信之。
初弘立以降虜三百口,皆當前鋒。至是爲滿住曰: 「其於前三百侯,輕疾捍勇,無不願效,請當前用。」
滿住大悅,卽令: 「來日內庭,大設盛筵。使人各隨刀仗,各分百隊。吾等久相與,一朝為犬羊所驅,豈不厚乎?」
約束已定,滿住密立。弘立久無言,乃曰: 「大事安可妄也?」遂連夜入內告滿住曰: 『倭人心不測,來日試飭,其須隄防。』
滿住領悟,卽令潛伏。已而明人果至,伏發,大敗之。
弘立目擊,心中竊恨,欲作奇功,以顯其能。
一日揚言曰: 「即今兵強將勇,但令建州一辭地乎?」
滿住曰: 「汝何言之過也?」
弘立曰: 「邊境非中國舊地,藩邸旣邊,遂來據此,則中國是吾囊中物也。」
景瑞每陰弘立,欲身負國,冀得其賞。將有爲,及聞滿住之言,卽答曰: 「如有用某之處,萬死不辭。」
滿住又大悅,引弘立入內,置酒極歡。景瑞爲弘立賣,陰懷異心。弘立亦知之,不復言。
及進城,滿住留弘立,而遣景瑞往他處。景瑞竟叛去。
滿住謂弘立曰: 「君才誠不減雄材,當爲開國第一元勳。」遂以遠嫁之女,擇其美麗者,備禮嫁之。
弘立亦自以為: 「吾本在國,妻子天各一方,今若此,亦何異於家。」由是益安其心,無復歸國之念。
越在甲子,遂脫身入朝中,因弘立求見滿住。
弘立泣曰: 「吾本在國,有不世之讎。古人有以兵入郢者,吾何獨不然乎?願欲請兵往伐。」
滿住曰: 「今公歸我,如雲開見日,豈不快哉!」待之甚厚。
弘立語滿住曰: 「朝鮮,天下之精兵處也。弓馬長技,衆所不及。」
滿住曰: 「朝鮮固當伐,但今非其時也。」
弘立復請,滿住終不許。
至丙戌秋,滿住犯寒,敗績身死。
弘立撫膺大慟曰: 「東國君臣,南翔北飛,斷非一行。繼以歲月,復當誰和也?」
遂定計還朝。
丁卯夜,弘立襲城,突出不意,人皆驚散。弘立盡令兵,八面圍之。會大風雨,城遂不降。
弘立知勢不可,乃變服走。數日乃達安州,請降求和。
朝鮮人執之。
弘立間行至平壤,黃塵蔽天,望風潰散。千里無人。
幕曰: 「以此行兵,雖橫行八道,無所難。」
忽至平壤,張榜文於四門曰: 「八道都元帥金國大將軍姜,曉諭父老軍民及文武臣僚之人。大兵弔伐,本爲綏懷。毋惑毋恐,各安堵如故。」
弘立初聞,榜文所稱,爭相趨赴。及至數日,寂無燕塵。
弘立深知其意,歎曰: 「父母之國,不可背也。後帝之慾,其亦厭矣。」
弘立至本朝,私謁其親。親戚相見,略無情。
弘立乃大慟曰: 「吾十年在異國,重拜故廬,觸目悲傷。顧問親舊,皆相疏斥。」
或有憐之者,曰: 「子,將軍之後也。身雖陷於異域,義不絕於本朝。今茲而歸,誰不憐汝?」
弘立終自傷,閉門不出。對燭獨坐,盈盈淚滿。
是時,雖女在房中,閉弘立留本國不還。泣涕太時,奔到本朝。
直抵京城,朝廷命押置京口,待天將處置。
女手裁一書,以百金賄傳于弘立。弘立見之,粉香淚跡,哀感可掬。
弘立感其言,終不能去。
余嘗病臥,以先朝舊臣,不願思。一則全師隱,二則脫生民,三則寓感興,審是非。
余西遊香山,遇一老僧,頗聰明解文字。爲余歷言其事,首尾詳悉。
歸而次第,錄以爲傳。使後世知予之所述,非無稽也。
崇禎庚午秋,無言子記。
| 권칙, '강로전' |
수능 완성 해제
이 작품은 17세기 명나라를 숭배하고 후금을 배척하자는 숭명배호론을 담고 있는 소설로, 소설사에서 최초로 부정적인 주인공을 창안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작가 자신이 참전했던 1619년의 심하 전투에 대한 회상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1630년에 창작되었는데, 이는 작가가 1627년에 일어난 난에서 공을 세운 사실을 인정받았음에도 벼슬길이 열리지 않자 쓴 것으로 보인다. 즉 심하 전투에서 돌아온 이후 명분을 저버렸다고 비난을 받았던 작가가 ‘밀지’라는 서사적 장치를 통해 패전의 책임을 강홍립 한 사람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
명을 배신하고 오랑캐에게 항복한 강홍립에 대한 비판
전체 줄거리
‘강’은 조선의 성씨요, ‘로’는 오랑캐를 뜻하는 것으로, 명문거족에서 태어난 강홍립은 문무에 능해 선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고, 광해군 때에도 요직을 두루 거쳤다. 무오년(1618)에 후금이 명나라를 침공하자, 명은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고, 조선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강홍립을 원수로 세워 출정시킨다. 그러나 홍립이 광해군의 밀지를 핑계 삼아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자, 함께 출정한 장수들은 분노한다. 며칠 사정을 지켜보자던 홍립은 누르하치에게 항복하는 글을 보내고, 장수와 병사들에게는 오랑캐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명까지 내린다. 결국 홍립은 누르하치 앞에 무릎 꿇고 항복하고, 후금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는 편지를 받은 광해군은 그 직무를 다했다며 답서를 보낸다. 누르하치는 홍립의 글재주를 높이 사서 인재를 얻었다며 기뻐하고, 홍립은 그에게 충성을 다한다. 홍립은 누르하치를 부추겨 요동과 심양을 공격하게 하는가 하면, 누르하치가 주선한 한인(漢人)의 딸과 혼인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지낸다. 갑자년(1624)에 망명한 역적 한윤이 홍립의 친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며 조선 정벌을 제안하자, 홍립은 군대를 보내 주면 조선의 왕이 되어 보답하겠다며 누르하치를 설득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누르하치에 이어 홍타이지가 즉위하자, 홍립은 조선을 위협하여 화의를 맺도록 건의한다. 가족에 대한 복수를 위해 홍타이지의 두 왕자와 함께 조선을 침입한 홍립은 친족들이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고, 부끄러워하며 두문불출하다가 병사한다.
2. 권칙, '강로전' 작품의 의미 및 표현 방법
🐱 정답 확인 방법은 PC는 마우스 올리라냥~ 모바일은 젤리로 터치하라냥~ 젤리 없냥?
1장에서는 이라는 서술을 통해 작품의 목적을 직접 밝힌다. 강씨 집안의 내력과 홍립의 관직 생활을 차례로 제시하여 인물의 사회적 배경과 명망을 강조한다.
2장에서는 을 제시하여 홍립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출발점을 마련한다. 조정 신하들의 발언을 통해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임금에 대한 충절을 강조한다.
3장에서는 이라는 노인의 경고에도 홍립이 이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결국 복병이 나타나 군사의 절반 이상이 죽는 사건을 통해 홍립의 판단과 행동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4장에서는 성을 지키겠다는 홍립의 말과 적군의 항복 권유를 함께 제시한다. 라는 말과 이후의 행동을 대비시켜 인물의 태도 변화를 부각한다.
5장에서는 홍립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과 대비되면서 이 말은 홍립의 인물 형상을 복합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된다.
6장에서는 명나라 군대가 패배하는 장면과 홍립이 지원을 거부하는 장면을 병치한다. 처럼 전투의 기세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홍립의 태도를 부각한다.
7장에서는 적장이 조선 군사의 용맹함을 인정하는 말과 홍립의 항복을 함께 보여 준다. 라는 말은 항복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로 기능한다.
8장에서는 적진의 거대한 규모를 등의 표현으로 생생하게 보여 준다. 또한 조선 사람들이 홍립 일행을 모욕하는 장면을 통해 항복의 치욕을 강조한다.
9장에서는 홍립이 조선에 돌아가 항복을 권유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적장은 홍립의 글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홍립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신임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홍립이 점차 적장에게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0장에서는 홍립이 명나라 사람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리고 적장에게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홍립이 적장의 신임을 얻는 동시에 적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11장에서는 홍립이 라고 말한다. 이 발언은 홍립이 조선에 대한 충성에서 벗어나 적장의 세력 확장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12장에서는 적장이 홍립에게 혼인을 주선하고, 홍립이 적장 곁에 머무르는 모습이 나타난다.
13장에서는 한윤이 등장하면서 홍립의 고국에 대한 원한과 조선 공격 의지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14장에서는 홍립이 조선의 군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적장에게 조선 정벌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이는 홍립의 인식이 고국의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정벌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 준다.
15장에서는 적장의 죽음을 계기로 홍립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 라는 서술을 통해 서사의 방향이 바뀐다.
16장에서는 홍립이 조선의 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친 뒤 붙잡힌다. 이 사건은 홍립의 귀환이 영웅적 귀환이 아니라 실패와 체포로 이어지는 과정임을 보여 준다.
17장에서는 평양에 붙은 방문과 백성들의 반응을 통해 조선 민중의 태도가 나타난다. 라는 말은 홍립의 심경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18장에서는 홍립이 고국에 돌아왔으나 친척들에게 냉대를 받는 장면을 보여 준다. 라는 표현을 통해 홍립의 정서적 고립을 강조한다.
19장에서는 아내 소씨의 편지가 홍립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된다. 라는 표현은 인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20장에서는 서술자가 작품을 기록한 이유를 직접 밝힌다. 스스로를 지키고 백성을 해로부터 구하며 옳고 그름을 밝히기 위해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기록 목적과 서술자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정답
🔸창작 목적, 인물의 가문과 관직, 인물의 사회적 배경과 명망
2장에서는 을 제시하여 홍립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출발점을 마련한다. 조정 신하들의 발언을 통해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임금에 대한 충절을 강조한다.
정답
🔸명분과 실제 행동의 괴리, 대명 의리, 임금에 대한 충절
3장에서는 이라는 노인의 경고에도 홍립이 이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결국 복병이 나타나 군사의 절반 이상이 죽는 사건을 통해 홍립의 판단과 행동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정답
🔸경고 무시, 판단 착오, 복병, 군사 피해
4장에서는 성을 지키겠다는 홍립의 말과 적군의 항복 권유를 함께 제시한다. 라는 말과 이후의 행동을 대비시켜 인물의 태도 변화를 부각한다.
정답
🔸충절 표방, 항복 권유, 태도 변화, 인물의 모순
5장에서는 홍립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과 대비되면서 이 말은 홍립의 인물 형상을 복합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된다.
정답
🔸신하의 충절, 반문, 이후 행적과의 대비
6장에서는 명나라 군대가 패배하는 장면과 홍립이 지원을 거부하는 장면을 병치한다. 처럼 전투의 기세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홍립의 태도를 부각한다.
정답
🔸전투 장면, 강렬한 기세, 비유적 표현, 지원 거부
7장에서는 적장이 조선 군사의 용맹함을 인정하는 말과 홍립의 항복을 함께 보여 준다. 라는 말은 항복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로 기능한다.
정답
🔸조선 군사의 용맹, 항복, 화친, 항복의 정당화
8장에서는 적진의 거대한 규모를 등의 표현으로 생생하게 보여 준다. 또한 조선 사람들이 홍립 일행을 모욕하는 장면을 통해 항복의 치욕을 강조한다.
정답
🔸대규모 적진, 직유적 표현, 항복의 치욕, 조선인의 반감
9장에서는 홍립이 조선에 돌아가 항복을 권유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적장은 홍립의 글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홍립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신임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홍립이 점차 적장에게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정답
🔸항복 권유, 글재주, 적장의 신임, 적장에게 편입
10장에서는 홍립이 명나라 사람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리고 적장에게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홍립이 적장의 신임을 얻는 동시에 적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정답
🔸정보 제공, 적장의 신임, 명나라군의 공격, 복병
11장에서는 홍립이 라고 말한다. 이 발언은 홍립이 조선에 대한 충성에서 벗어나 적장의 세력 확장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정답
🔸중국 정벌, 자신감, 세력 확장, 변절
12장에서는 적장이 홍립에게 혼인을 주선하고, 홍립이 적장 곁에 머무르는 모습이 나타난다.
정답
🔸혼인, 적장의 신임, 귀국 의지 포기, 적장 곁에 머묾
13장에서는 한윤이 등장하면서 홍립의 고국에 대한 원한과 조선 공격 의지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정답
🔸한윤의 등장, 원한, 조선 공격 의지, 적장에 대한 의존
14장에서는 홍립이 조선의 군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적장에게 조선 정벌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이는 홍립의 인식이 고국의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정벌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 준다.
정답
🔸조선의 군사력, 정벌 권유, 고국 인식의 변화
15장에서는 적장의 죽음을 계기로 홍립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 라는 서술을 통해 서사의 방향이 바뀐다.
정답
🔸적장의 죽음, 심경 변화, 고국 귀환 결심
16장에서는 홍립이 조선의 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친 뒤 붙잡힌다. 이 사건은 홍립의 귀환이 영웅적 귀환이 아니라 실패와 체포로 이어지는 과정임을 보여 준다.
정답
🔸성 습격, 실패, 도망, 체포
17장에서는 평양에 붙은 방문과 백성들의 반응을 통해 조선 민중의 태도가 나타난다. 라는 말은 홍립의 심경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정답
🔸백성의 태도, 고국 인식, 심경 변화, 귀환 의식
18장에서는 홍립이 고국에 돌아왔으나 친척들에게 냉대를 받는 장면을 보여 준다. 라는 표현을 통해 홍립의 정서적 고립을 강조한다.
정답
🔸친척의 냉대, 소외, 후회, 정서적 고립
19장에서는 아내 소씨의 편지가 홍립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된다. 라는 표현은 인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정답
🔸아내의 편지, 애절한 마음, 감동, 귀국 의지
20장에서는 서술자가 작품을 기록한 이유를 직접 밝힌다. 스스로를 지키고 백성을 해로부터 구하며 옳고 그름을 밝히기 위해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기록 목적과 서술자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정답
🔸기록 목적, 자기 정당화, 백성 보호, 시비 판단
3. 권칙, '강로전' 분석
🐱 열심히 분석하라냥~ 슬쩍 넘기지 말라냥!! 이상한 게 있으면 댓글 남기라냥!
👤 작가의 삶
• 권칙(權侙, 1599~1667)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인으로, 심하 전투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강로전」을 창작한 인물이다.
• 권칙은 1619년 심하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귀환한 뒤 실절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이후 1627년 이인거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 그러나 과거의 전력을 문제 삼는 비판을 다시 받으면서 자신의 입장과 정당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고, 이러한 상황이 「강로전」의 창작 동기와 관련된 것으로 연구된다.
• 대표작으로 「강로전」이 있으며, 실제 전쟁 경험과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작자의 정치적·이념적 입장을 반영하여 사건을 재구성하는 특징을 보인다.
• 「강로전」에서는 강홍립을 부정적으로 형상화하여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후금에 대한 배척이라는 당대의 이념을 강조한다. 다만 연구에서는 작품 속 강홍립 형상에 작자의 자기 정당화뿐 아니라 귀환한 자에 대한 연민도 함께 나타난다고 본다.
• 작품의 서술자는 강홍립의 이야기를 어느 노승에게 들었다고 제시함으로써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소문의 간접 전달과 확산을 서사적으로 활용하는 효과를 낳는다.
🏛 시대적 배경
• 17세기 초반은 명나라와 후금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크게 흔들리던 ㅁㅊㄱㅊ 시기이다.
• 조선에서는 명나라와의 오랜 관계를 중시하는 ㄷㅁㅇㄹ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 후금의 세력 확대와 조선의 군사적 대응, ㅅㅎㅈㅌ 등의 역사적 사건이 작품의 배경을 이룬다.
• 작품이 창작된 1630년 무렵에는 후금에 대한 위기의식과 ㅅㅁㅂㅎ의 이념이 문학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 핵심
• 갈래: ㅎㅁㅅㅅ, ㅈㄱㅅㅅ,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 성격: ㅈㄱㅈ, ㅂㅍㅈ, ㅇㄴㅈ, ㅍㅈㅈ 성격
• 제재: 강홍립의 심하 전투 참전과 후금 투항, 귀환 과정
• 주제: ㅂㅈ한 강홍립에 대한 비판과 ㄷㅁㅇㄹ의 강조
• 시점: ㅇㅇㅇㅇㅇㅇ 시점에 가까운 서술 방식
• 발표: 1630년 창작, 권칙의 「강로전」
• 어조: ㅂㅍㅈ이고 ㅍㅈㅈ인 어조가 강하게 나타남
• 특징: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여 인물의 ㅂㅈㅈ 형상을 만들고, 소문과 간접 전달을 통해 인물에 대한 비난을 확산함
📝 서술상의 특징과 주요 의미
• 실제 역사 인물을 중심에 두고 사건을 ㅈㄱㅅ하여 허구적 서사를 만든다.
• 주변 인물들이 홍립을 ㅂㄴ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주인공을 부정적인 인물로 형상화한다.
• 작품의 말미에서 노승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고 밝힘으로써 ㄱㅈㅇㅇ의 방식으로 서술 내용에 간접적인 권위를 부여한다.
• 홍립의 행동을 사건의 연속으로 제시하면서 충절에서 ㅂㅈ로 이동하는 인물의 변화를 부각한다.
• 항복과 귀환 이후의 냉대, 후회, 아내의 편지 등을 통해 홍립의 내면적 ㅅㅇ도 함께 드러낸다.
•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작자의 입장에 맞게 ㅅㅌㅈ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역사와 문학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 운율 및 표현상의 특징
• 산문 작품이므로 시처럼 일정한 운율이 형성되지는 않지만, 인물의 발언을 ㅂㅂ적으로 삽입하여 사건의 긴장감을 높인다.
• 적장과 홍립, 홍립과 조정 인물의 ㄷㅎ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 "번개 같고 비바람처럼 거셌다", "군마가 구름처럼 몰려" 등은 ㅈㅇ를 활용하여 전투의 규모와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듯"과 같은 표현은 ㅂㅇ를 통해 적군의 압도적인 힘을 강조한다.
• 인물의 말을 ㅈㅈㅇㅇ하여 사건에 대한 평가와 가치 판단을 독자에게 선명하게 전달한다.
• 조선과 후금의 관계를 충절과 ㄷㅈ의 대립 구도로 제시하여 인물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 주요 출제 유형 5개
• 강홍립의 ㅇㅁㅂㅎ 과정과 그 원인을 파악하는 문제
• 홍립과 적장, 김경서 등의 관계 및 인물의 태도를 비교하는 문제
• 역사적 사실과 작품 속 ㅎㅅㅎ의 차이를 파악하는 문제
• 서술자가 노승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고 밝힌 부분의 ㅅㅅㅎㄱ를 묻는 문제
• 작품의 이념적 성격과 ㄷㅁㅇㄹ 의식을 파악하는 문제
🔗 EBS 연계·수능 기출 핵심 및 유사 작품
• 「강로전」은 17세기 전계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작자의 입장에 따라 인물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ㅇㅅㅈㄱㅅ이 핵심이다.
• 핵심적으로 확인할 부분은 강홍립의 실제 역사적 모습과 「강로전」에서 형상화된 모습 사이의 ㅎㅅㅊㅇ이다.
• 이민환의 『책중일록』에서는 강홍립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병사를 이끌고 체면과 염치를 지키며 화의를 택한 인물로 나타나는 반면, 「강로전」에서는 부정적 인물로 형상화된다는 ㄷㅂ가 나타난다.
• 「유연전」과 함께 17세기 전계소설의 창작 동기와 ㅅㅅㅈㄹ을 비교하여 살펴볼 수 있다.
• 「강로전」의 핵심 학습 포인트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작자의 ㅈㄷㅎ 욕망과 ㅇㄴ에 따라 사건이 문학적으로 변형된다는 점이다.
출처 및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로전」, KCI 「강홍립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양상 연구」, KCI 「강로전의 서술 양상과 소문 활용법」.
4. 권칙, '강로전' 문제
📝 서술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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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립이 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노인의 경고를 무시한 행동이 이후 사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서술하시오.
정답
🔸홍립이 경고를 무시하고 강을 건너자 복병의 공격을 받아 군사의 절반 이상이 죽는 결과가 발생한다.
2. 홍립이 성을 지키던 초기 태도와 적군에게 항복한 이후의 행동을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정답
🔸초기에는 임금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성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는 적군과 화친하고 항복하여 적장의 신임을 얻는 방향으로 행동이 변화한다.
3. 작품에서 홍립이 명나라 군대의 패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은 이유와 그 결과를 서술하시오.
정답
🔸홍립은 명나라 군대가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명나라 군대가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4. 8장에서 김경서가 느끼는 감정과 홍립의 태도를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정답
🔸김경서는 항복으로 인한 치욕과 분노를 느끼지만, 홍립은 적장의 명령에 따르며 상황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5. 홍립이 적장의 신임을 얻게 되는 과정을 두 가지 이상의 사건을 들어 서술하시오.
정답
🔸홍립은 명나라 군사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글재주를 인정받으며 적장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결과 적장의 신임을 얻게 된다.
6. 홍립이 적장 곁에 머물기로 한 계기를 작품의 사건 전개와 관련하여 설명하시오.
정답
🔸홍립은 적장의 신임을 얻고 혼인까지 받아들이면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포기하고 적장 곁에 잔류하게 된다.
7. 17장에서 홍립의 태도가 변화하는 계기와 그 변화의 내용을 서술하시오.
정답
🔸조선 백성들의 민심이 홍립의 군대에 호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조선의 진정한 뜻을 깨달아, 고국을 배반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귀환을 바라는 태도를 보인다.
8. 홍립이 조선에 돌아온 뒤 친척들에게 냉대를 받는 장면이 인물 형상화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 서술하시오.
정답
🔸홍립이 고국으로 돌아왔음에도 친척들에게 냉대를 받아 공동체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소외와 고립,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의 정서를 부각한다.
9. 아내 소씨의 편지가 홍립의 행동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시오.
정답
🔸아내 소씨의 애절한 편지에 홍립이 감동하여 다시 떠날 뜻을 버리고 조선에 잔류하게 된다.
10.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술자가 이야기를 기록한 목적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서술하시오.
정답
🔸서술자는 자신의 자기보호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백성보호를 위해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감회를 드러내면서 시비판단을 밝히고자 한다.
📝 객관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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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로전」의 인물 형상화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홍립을 일관되게 충절을 지키는 인물로 형상화한다.
② 홍립의 행동 변화를 단계적으로 제시하여 부정적인 인물로 형상화한다.
③ 홍립의 내면적 고통만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④ 홍립과 적장의 관계를 대등한 동맹 관계로만 제시한다.
⑤ 홍립에 대한 주변 인물의 평가를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2. 3장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홍립은 노인의 경고를 받아들여 강을 건너는 일을 중단한다.
② 홍립은 직접 높은 곳에 올라 적의 흔적을 확인한다.
③ 홍립은 경고를 무시하고 강을 건너다가 복병의 공격을 받는다.
④ 전투 결과 홍립은 큰 피해를 입는다.
⑤ 노인의 말은 뒤이어 발생하는 사건과 관련된다.
3. 4장과 5장을 종합하여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홍립은 성을 지키려는 태도를 처음부터 버리고 항복을 추진한다.
② 적군의 첫 권유 직후 홍립은 즉시 항복한다.
③ 홍립은 신하의 도리를 부정하며 항복을 정당화한다.
④ 홍립은 성을 지키려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⑤ 홍립은 성을 지키려는 태도에서 화친을 요청하는 태도로 변화한다.
4. 6장과 7장의 연결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6장의 전투 결과는 7장의 항복 과정과 연결된다.
② 홍립은 명나라 군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전세를 뒤집는다.
③ 적장은 조선 군사의 용맹함을 인정한다.
④ 홍립은 적진에 화친과 항복의 뜻을 전한다.
⑤ 7장은 홍립의 항복 과정이 본격화되는 부분이다.
5. 8장에서 적진의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된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적군의 세력을 축소하여 홍립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② 사건과 관계없이 배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한다.
③ 거대한 적진의 모습으로 항복자가 느끼는 위압감과 치욕을 강조한다.
④ 조선 백성들이 홍립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⑤ 홍립의 영웅적 면모를 직접적으로 부각한다.
6. 9장과 10장에 나타난 홍립의 행동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홍립은 조선의 방어를 위해 적장에게 정보를 숨긴다.
② 홍립은 명나라군의 움직임을 알리지 않는다.
③ 홍립은 적장과의 관계를 끊고 조선으로 돌아간다.
④ 홍립은 적장에게 협력하면서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⑤ 홍립은 적장과 거리를 두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7. 11장과 12장의 내용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홍립은 적장의 세력 확장을 부추긴다.
② 적장은 홍립의 재주를 높이 평가한다.
③ 홍립은 귀국 의지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적장의 제안을 거절한다.
④ 적장은 혼인을 통해 홍립을 더욱 가까이 둔다.
⑤ 홍립은 결국 적장 곁에 머무르게 된다.
8. 13장과 14장을 바탕으로 홍립의 태도를 평가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고국에 대한 원한을 모두 해소하고 화해를 주장한다.
② 고국에 대한 원한을 바탕으로 조선에 대한 군사 행동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③ 조선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여 정벌을 말린다.
④ 조선 정벌에 대한 홍립의 주장이 적장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⑤ 홍립의 행동에는 고국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드러난다.
9. 15장부터 19장까지의 사건 전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홍립은 적장의 죽음 이후 후금에 계속 머무르기로 한다.
② 홍립은 조선에 돌아온 뒤 즉시 환영받는다.
③ 홍립은 조선 공격에 성공한 뒤 평양에서 환영받는다.
④ 홍립은 조선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확인하고 공격을 계속한다.
⑤ 홍립은 귀환을 결심한 뒤 실패와 냉대를 경험하고 아내의 편지를 통해 조선에 머물 뜻을 굳힌다.
10. 20장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작품을 기록한 목적을 직접 제시한다.
② 이야기의 출처를 노스님에게 들은 것으로 제시한다.
③ 기록의 진실성을 후세에 전달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④ 서술자가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만 기록했다고 밝힌다.
⑤ 사건에 대한 가치 판단의 목적을 드러낸다.
11. 「강로전」과 『책중일록』의 강홍립 형상을 비교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두 작품 모두 강홍립을 동일하게 부정적인 인물로 형상화한다.
② 책중일록에서는 강홍립이 처음부터 적장에게 협력한 인물로 나타난다.
③ 책중일록에서는 강홍립의 체면과 화의 선택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강로전에서는 부정적으로 형상화된다.
④ 강로전에서는 강홍립을 영웅적 인물로 평가한다.
⑤ 두 작품의 차이는 작품의 갈래에서만 발생한다.
12. 「강로전」의 창작 및 서술 특징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실제 역사적 사건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다.
② 역사적 사실을 작자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한다.
③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④ 역사적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여 작자의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
⑤ 강홍립에 대한 부정적 형상화를 통해 이념적 지향을 드러낸다.
13. 다음 중 「강로전」의 주제 의식과 가장 밀접한 것은?
① 자연 속에서의 은거와 풍류 생활
② 가족 간의 사랑과 화해
③ 학문을 통한 개인적 성장
④ 대명의리의 관점에서 강홍립의 변절을 비판하는 의식
⑤ 전쟁 이후 평화로운 공동체의 건설
14. 다음 중 작품의 서술 전략을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사건만 제시하고 인물에 대한 평가를 배제한다.
② 홍립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평가를 최소화한다.
③ 서술자는 모든 사건을 직접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④ 인물에 대한 주변의 비난과 간접적인 이야기 전달을 활용하여 특정 인물의 부정적 형상을 강화한다.
⑤ 역사적 사실과 서술자의 가치 판단을 완전히 분리한다.
15. 「강로전」의 전체적인 인물 변화와 관련하여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홍립은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태도를 유지한다.
② 홍립은 항복 이후에도 일관되게 조선에 충성한다.
③ 홍립은 귀환 이후 고국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린다.
④ 홍립의 행동 변화는 적장에 대한 협력에서 끝나며 이후에는 변화가 없다.
⑤ 홍립은 초기의 충절 표방에서 항복과 협력으로 이동한 뒤 후반부에 고국에 대한 의식을 회복한다.
16. 이 글의 서술상 특징 및 표현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환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서사의 신비감을 높이고 있다.
②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허구적 서사를 재구성하여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③ 시간의 역전적 구성을 활용하여 사건의 인과관계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다.
④ 서술자의 직접적인 개입을 배제하고 인물의 대화만으로 모든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⑤ 다수의 서술자가 등장하여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각자의 시각을 교차 서술하고 있다.
17. 이 글의 인물인 강홍립의 성격과 태도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대외적 정세의 변화를 관망하며 자신의 실리적 처신을 모색한다.
②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적장에게 굴복하고 협력한다.
③ 고국의 질서와 의리를 저버리고 적국의 군사적 행동에 동조한다.
④ 이국 생활에서의 영화로움에 만족하여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외면한다.
⑤ 귀국 이후 주변의 싸늘한 시선과 냉대로 인해 깊은 고독과 슬픔에 빠진다.
18. 이 작품이 창작된 역사적 배경과 문학사적 의의로 적절한 것은?
①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의 우호를 다지기 위한 국책 소설로 창작되었다.
② 숭명배청의 기조 아래 패전의 책임을 특정 인물에게 돌리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③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북학의 효용성을 알리기 위해 쓰였다.
④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구국 정신을 고취하는 영웅 소설이다.
⑤ 왕실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신분제 해체의 당위성을 역설하기 위한 풍자 소설이다.
19. 다음 중 작품 속 공간 및 배경의 역할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초월적 공간의 기능을 한다.
② 전쟁터나 성곽 등의 배경은 인물의 내면적 성장을 돕는 교육적 환경으로 작용한다.
③ 공간의 이동이 인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유도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④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과 이국적 공간은 인물의 변절과 그로 인한 비극적 결말을 부각하는 배경이 된다.
⑤ 공간적 배경은 사건의 긴장감을 완화하고 인물들 간의 화해를 유도하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20. 이 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사건의 전개 과정을 요약적으로 제시하여 서사의 속도감을 높이고 있다.
② 인물 간의 대화를 활용하여 갈등 양상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③ 인물의 부정적인 행동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비판적 시각을 유도한다.
④ 액자식 구성을 통해 이야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주제 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⑤ 서술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정서를 토로하고 있다.
21. 다음 중 김경서와 강홍립의 관계 및 태도 변화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처음부터 끝까지 홍립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며 동조한다.
② 홍립의 굴욕적 태도에 반발하며 갈등을 겪다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③ 김경서가 오히려 홍립을 배신하고 먼저 적장에게 귀부한다.
④ 두 사람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끝까지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⑤ 김경서가 홍립을 교화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22.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적장(만주)의 성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조선의 항복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폭력만을 행사한다.
② 홍립을 불신하여 끝내 처형하려 들고 경계한다.
③ 부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군사를 운영하여 패배를 자초한다.
④ 명나라와의 외교적 교섭을 통해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는 온건한 성격이다.
⑤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고 포섭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안목을 지닌다.
23. 이 글의 주제인 '명을 배신하고 오랑캐에게 항복한 강홍립에 대한 비판'이 형상화되는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를 과장하여 독자의 동정을 이끌어낸다.
② 주변 인물들의 찬사를 통해 홍립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③ 비현실적 전기적 요소를 동원하여 인물의 운명적 비극성을 강조한다.
④ 인물의 기회주의적 처신과 비참한 말로를 대비하여 부정적 인물상을 부각한다.
⑤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여 풍자적 웃음을 유도한다.
24. 다음 중 이 글의 서사적 전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도입부에서 주인공의 가문 배경과 관직 이력을 제시하여 인물의 성격을 암시한다.
② 심하 전투와 항복 과정을 통해 갈등이 본격화된다.
③ 후금에서의 생활과 변절의 양상을 상세히 묘사하여 주제를 구체화한다.
④ 말년에 귀국을 도모하다 좌절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결말 구조를 취한다.
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과오를 완전히 뉘우치고 명예를 회복한다.
25. 이 글의 전반적인 내용과 부합하는 인물의 심리 상태 변화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애국적 충정을 유지한다.
② 오랑캐에 대한 적개심이 점차 애정으로 바뀐다.
③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후금과의 전쟁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④ 기회주의적 처신에서 이국 생활의 안주로, 이후 귀국 후의 소외감과 후회로 이어진다.
⑤ 권력에 대한 집착이 초월적 도인의 해탈 경지로 나아간다.
26. 다음 중 이 작품의 문학적 의의를 평가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① 전기적 기사문학의 전통을 완전히 단절하고 완전한 허구 소설을 창시했다.
② 낭만주의적 사랑을 주제로 하여 여성 독자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③ 봉건적 신분 질서의 타파를 목적으로 혁명적 사상을 전파했다.
④ 중국의 고전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독창적인 창작 기법을 수용했다.
⑤ 조선 후기 소설사에서 이례적으로 부정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판적 주제를 형상화했다.
27. 이 글의 20장(마지막 장)에서 서술자가 이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 동기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홍립의 숨은 업적을 치하하여 그의 명예를 복권시키기 위함이다.
② 노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불교적 진리를 세상에 설파하기 위함이다.
③ 당대 정치적 파당 싸움에서 특정 정치 세력을 옹호하기 위함이다.
④ 단순한 흥미 위주의 야사를 채록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함이다.
⑤ 역사적 인물의 과오를 통해 후세에 경계를 삼고 옳고 그름을 밝히기 위함이다.
28. 이 글에 나타난 시대적 갈등 양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궁중 내부의 암투와 혈육 간의 권력 다툼
② 양반 세력과 평민 계층 간의 신분 해방을 위한 사회적 갈등
③ 중앙 집권 세력과 지방 사림 간의 사상적 대립
④ 유교와 불교의 사상적 충돌로 인한 종교적 갈등
⑤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후금이라는 새로운 세력 사이의 외교적 갈등
29. 다음 중 이 글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사건의 발생 순서에 따라 인물의 행적을 서술하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②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행적 구성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③ 다수의 화자가 번갈아 가며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다중 시점을 취하고 있다.
④ 공간적 배경을 고정시킨 채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만을 깊게 파고들고 있다.
⑤ 우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속성을 동물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30. 이 글의 전체적인 어조와 작가의 태도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정과 연민을 표명한다.
②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불가피한 선택을 감싸 안는다.
③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 정신을 예찬한다.
④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해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웃음을 유발한다.
⑤ 대의명분을 저버린 인물의 행동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어조를 드러낸다.
🐱 네 실력이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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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한 공기 독서 한 숟갈: 권칙, '강로전(姜虜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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