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 자신을 드러내거나(顯) 시시때때를 맞아
벼슬길에서 물러나 숨는(隱) 처신에 관한 논설(고금(古今): 예와 지금.
군자(君子): 덕을 갖춘 사람, 은현(隱顯): 숨을 은(隱)과 나타날 현(顯).
론(論): 어떠한 사안에 대해 이치에 맞게 논함.)
군자의 처신은 어렵다. 이롭다고 해서 조급하게 나가 벼슬해서도 안 되고,
위태롭다고 해서 거리낌 없이 용감하게 벼슬에서 물러나서도 안 된다. 공자가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으시다가 건져서 급하게 제나라를 떠난 게 벼슬하려고
억지로 서두르신 것이 아니요, 벼슬하던 노나라를 떠나실 때 "더디다. 내 걸음이
여!"라고 하신 게 억지로 느리게 하시려던 것이 아니다. 성현은 벼슬에 나아가는
일과 벼슬에서 물러나는 일을 의리에 합당한가와 시의에 맞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했을 뿐이다.
<수특 중략 부분 시작>
이윤(伊尹)은 신야(莘野)의 한 명의 농부인데, 밭두둑 가운데 있고 요순의 도를
즐기며 자득(自得)이라 여겼다.
제을(帝乙)【제을(帝乙): 중국 은(殷)나라 황제의 이름. 태정(太丁)의 아들.】이
세 번 초빙하자 괜찮다는 걸 보고 나가서 재상인 보형(保衡)으로 삼았다.
부열(傅說)은 부암(傅岩) 들판의 한 명의 죄수인데, 부암의 건설 현장에 있어
담장 짓는 기둥을 잡고 즐거워하길 평생토록 했다.
무정(武丁)이 밤에 성인을 얻은 꿈을 꾸고 두루 구하다가 때를 타서 나가
총재(冢宰)로 임명했다.
태공망(太公望)은 위수(渭水) 물가의 한 명의 낚시꾼인데, 맑은 위수에 낚싯대를
던지고 띠풀에 앉아 물고기를 잡으며 몸을 마칠 것 같이 했다.
서백(西伯)이 사냥하는 날을 만나 계책이 합치되고 뜻이 동일하자 상보(尙父)로
삼았다.
이 세 사람이 은둔함은 어찌 몸을 깨끗이 하고 인륜을 어지럽히려 할 뿐이겠으며,
현달함은 어찌 명성을 팔고 이익을 사러 그리 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응당 처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려 아득히 서로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주역』에서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라고 했는데,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께서 “물은 축축한 데로 흐르고 불은 타는 데로 나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며, 성인이 일어나니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네.”라고 말했으니,
때를 만난 것을 말한다.
상산사호(商山四皓)【상산사호(商山四皓): 상산에 숨은 네 늙은이라는 뜻으로, 곧
동원공(東園公)・기리계(綺里季)・하황공(夏黃公)・녹리선생(甪里先生)을
말하는데, 수염과 눈썹이 모두 희다 하여 일컬어진 말이다. 한 고조(漢高祖)가
태자를 폐위(廢位)하고, 척부인(戚夫人) 소생인 조왕 여의(趙王如意)를 세우려
하자, 장량(張良)이 계책을 내어 고조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상산사호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폐백과 예를 갖추고 상산사호를 초빙한 다음,
고조가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 그들로 하여금 태자를 시위(侍衛)하게 하였다.
고조가 그들이 상산사호임을 알고는 매우 놀라, 태자를 폐위하려던 생각을 바꾼
다음 척부인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초가(楚歌)를 부르기를, “큰 고니가 높이
날아, 단번에 천리를 가도다. 날개(羽翼)가 이미 자라, 사해를 가로지르도다.
사해를 가로지르니, 또한 어찌하리요. 아무리 주살이 있은들 오히려 어디에
쓰겠는가.” 하였다. 『한서(漢書)』 「장량전(張良傳)」】가 진나라를 피하고,
정절(靖節)【정절(靖節): 진(晉)의 고사(高士) 도잠(陶潛)의 시호(諡號). 그는
팽택령(彭澤令)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오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었으며, 시주(詩酒)로 한가하게 여생을 보냈다.
『진서(晉書)』 「도잠전(陶潛傳)」】은 송나라에서 신하가 되지 않았으니,
세상과 나의 어긋남 때문이다.
백이는 주나라를 떠났는데 성의 맑음이라 말했고, 전금(展禽)은 노나라에서
벼슬했는데 성의 화합이라 말했으며, 이윤은 은나라로 갔는데 성의 자임이라
말했지만, 그 성이 이루어짐은 하나인 것이다.
이사(李斯)는 진나라에서 벼슬했고, 양웅(揚雄)은 신나라에서 벼슬했으니, 출처는
비록 달랐더라도 이익을 구하고 의를 어긴 것은 하나인 것이다.
<중략 끝>
그러므로 선비의 거취, 즉 은거함과 벼슬함은 반드시 먼저 그것이 의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도를 행함에 마땅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헤아려서 결정해야 하며, 꼭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고 하여 어진 것이고, 벼슬길에 나아갔다고 해서 아첨이
되며, 은거했다고 하여 고상하고, 벼슬했다고 해서 구차한 것은 아니다. 마땅히
떠나야 했기에 떠난 것이므로, 미자(微子)가 주나라 임금을 떠난 것을 두고
은나라를 배반했다고 할 수 없고, 나아갈 만하기에 나아간 것이므로, 이윤과
부열이 은나라에 벼슬한 것을 두고 뜻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은거할 만하기에
은거한 것이므로,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숨은 것을 고상하다고 할 수 없고,
마땅히 벼슬에 나아가야 했기에 나아간 것이므로, 강태공이 무왕을 도와 위세를
떨친 것을 구차하다고 할 수 없다. 『주역』 고괘 상구(上九)에 이르기를 “왕후를
섬기지 않는다.”라고 했고, 건괘(乾) 구이(九二)에 이르기를 “대인을 만나니
이롭다.”라고 했으니, 각각 그 처한 상황에 따를 뿐이다.
간교한 신하가 이익을 탐하여 작록을 사양함으로써 임금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든가, 위선적인 선비가 이름을 얻으려고 은둔하는 체하며 세상을 피해
다니는 것이라든가, 심지어 재주도 없고 덕도 부족해 세상에 버림받아 스스로
궁벽한 고을에 살며 아무런 힘도 없는 주제에 남을 꾸짖고 힐난하면서
거들먹거리며 사람들에게 “나 또한 은자의 무리다.”라고 말하는 것은, 추녀가
미녀 서시의 웃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격이니, 논할 것도 없다.
김시습(金時習), '고금군자은현론(古今君子隱顯論)'
수능 특강 해제
이 작품은 조선 전기의 사상가이자 문인인 김시습이 선비의 바람직한
거취를 주제로 하여 쓴 한문 수필로서, 그의 문집 매월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글쓴이는 벼슬길에 올라 나 라와 백성을 위해 노력하는 '출세의 삶'과
벼슬에서 물러나 도를 지키는 '은거의 삶'에 대해 논의하면서, 두 방식의 삶
가운데 무엇이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의리'와 '시의'에 맞는가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자, 이윤,
부열, 강태공, 도연명, 백이와 숙제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한다.
주제
선비의 바람직한 거취
구성
• 처음: 군자의 바람직한 거취를 판단하는 기준은 의리와 시의에 맞는가에 놓여
있음.
• 중간: 의리와 시의에 맞게 출세의 삶 또는 은거의 삶을 현명하게 선택했던 역사적
인물의 사례
• 끝: 의리와 시의가 아닌 개인의 이익과 명성을 위해 은거의 삶을 선택하는 간사한
인물의 사례
2. 시어의 의미 및 표현 방법
🐱 정답 확인 방법은 PC는 마우스 올리라냥~ 모바일은 젤리로 터치하라냥~
젤리 없냥?
군자의 처신은 어렵다. 이롭다고 해서 조급하게 나가 벼슬해서도 안 되고,
위태롭다고 해서 거리낌 없이 용감하게 벼슬에서 물러나서도 안 된다. 공자가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으시다가 건져서 급하게 제나라를 떠난 게 벼슬하려고 억지로
서두르신 것이 아니요, 벼슬하던 노나라를 떠나실 때
라고 하신 게 억지로 느리게 하시려던 것이 아니다. 성현은 벼슬에 나아가는 일과
벼슬에서 물러나는 일을
에 합당한가와
에 맞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했을 뿐이다.
정답
🔸공자의 처신, 시의를 기다림🔸마땅한 도리, 행동의 기준🔸시대의 흐름, 때,
기회
🔸제1단락: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은 의리와 시의에 따라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조급하거나 무작정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은 신야(莘野)의 한 명의 농부인데, 밭두둑 가운데 있고
를 즐기며
이라 여겼다. 제을(帝乙)이 세 번 초빙하자 괜찮다는 걸 보고 나가서 재상인
으로 삼았다.
은 부암(傅岩) 들판의 한 명의 죄수인데, 부암의 건설 현장에 있어 담장 짓는
기둥을 잡고 즐거워하길 평생토록 했다.
이 밤에 성인을 얻은 꿈을 꾸고 두루 구하다가 때를 타서 나가 총재(冢宰)로
임명했다.
은 위수(渭水) 물가의 한 명의 낚시꾼인데, 맑은 위수에 낚싯대를 던지고 띠풀에
앉아 물고기를 잡으며 몸을 마칠 것 같이 했다.
이 사냥하는 날을 만나 계책이 합치되고 뜻이 동일하자 상보(尙父)로 삼았다.
이 세 사람이
은 어찌 몸을 깨끗이 하고 인륜을 어지럽히려 할 뿐이겠으며,
은 어찌 명성을 팔고 이익을 사러 그리 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응당 처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려 아득히 서로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정답
🔸은나라·주나라의 현신🔸이상적인 정치와 도덕의 근본🔸스스로 만족하며 도를
깨달음🔸최고 재상 직명🔸임금의 올바른 인재 등용🔸때를 기다려 숨어
삶🔸벼슬하여 이름을 드러냄
🔸제2단락: 이윤·부열·태공망은 때를 기다려 은거하다가 시기를 만나 출사한
것이며, 명예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다.
『주역』에서 “
”라고 했는데,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께서 “물은 축축한 데로 흐르고 불은 타는
데로 나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며, 성인이 일어나니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네.”라고 말했으니,
을 말한다.
가 진나라를 피하고,
은 송나라에서 신하가 되지 않았으니,
때문이다.
정답
🔸덕 있는 인재가 아직 쓰이지 않고 숨어 있음🔸인재가 시대와 임금을 만나
기회를 얻음🔸세상이 어지러워 은거한 현인들🔸도잠, 세상과 뜻이 맞지 않아
벼슬하지 않음🔸도와 세상이 맞지 않아 은거함
🔸제3단락: 인재는 때를 만나야 쓰이며, 세상과 뜻이 맞지 않으면 은거하는
것이 마땅하다.
백이는 주나라를 떠났는데
이라 말했고, 전금(展禽)은 노나라에서 벼슬했는데
이라 말했으며, 이윤은 은나라로 갔는데
이라 말했지만, 그 성이 이루어짐은
인 것이다.
는 진나라에서 벼슬했고,
은 신나라에서 벼슬했으니, 출처는 비록 달랐더라도
은 하나인 것이다.
정답
🔸청렴결백, 의리를 굽히지 않음🔸세상과 조화롭게 도를 실천함🔸책임지고
스스로 나아감🔸본질은 도와 의리로 같음🔸이익 좇아 의를 어긴 예🔸사사로운
이익 위해 도리 저버림
🔸제4단락: 성인의 처신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도와 의리에서 같고, 이익을
좇은 자들은 본질적으로 그릇되다.
그러므로 선비의 거취, 즉 은거함과 벼슬함은 반드시 먼저 그것이
맞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헤아려서 결정해야 하며, 꼭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고 하여
이고, 벼슬길에 나아갔다고 해서
이 되며, 은거했다고 하여
하고, 벼슬했다고 해서
은 아니다.
마땅히 떠나야 했기에 떠난 것이므로, 미자(微子)가 주나라 임금을 떠난 것을 두고
은나라를 배반했다고 할 수 없고, 나아갈 만하기에 나아간 것이므로, 이윤과 부열이
은나라에 벼슬한 것을 두고 뜻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은거할 만하기에 은거한
것이므로,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숨은 것을 고상하다고 할 수 없고, 마땅히
벼슬에 나아가야 했기에 나아간 것이므로, 강태공이 무왕을 도와 위세를 떨친 것을
구차하다고 할 수 없다.
『주역』 고괘 상구(上九)에 이르기를 “
”라고 했고, 건괘(乾) 구이(九二)에 이르기를 “
”라고 했으니,
에 따를 뿐이다.
정답
🔸도리에 옳은가 판단🔸옳은 길 실천 가능한가🔸겉모습으로 판단
그릇됨🔸아첨하여 벼슬한 것 아님🔸겉모습 고상할 뿐🔸비굴하다고 단정할 수
없음🔸때 아니면 은거🔸때 만나면 나아감🔸시대·환경에 맞게 처신
🔸제5단락: 은거와 출사의 기준은 의리와 도이며, 겉모습으로 선비의 본질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처신할 뿐이다.
간교한 신하가 이익을 탐하여 작록을 사양함으로써 임금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든가,
위선적인 선비가 이름을 얻으려고 은둔하는 체하며 세상을 피해 다니는 것이라든가,
심지어 재주도 없고 덕도 부족해 세상에 버림받아 스스로 궁벽한 고을에 살며
아무런 힘도 없는 주제에 남을 꾸짖고 힐난하면서 거들먹거리며 사람들에게 “나
또한 은자의 무리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니, 논할 것도 없다.
정답
🔸본질 없이 겉만 꾸미는 위선, 가짜 은자 풍자
🔸제6단락: 덕과 실천은 없으면서도 이름만 얻으려고 하는 위선적인 자들을
강력히 비판한다.
3. 분석
🐱 열심히 분석하라냥~ 슬쩍 넘기지 말라냥!! 이상한 게 있으면 댓글 남기라냥!
📌 작가의 삶과 시대적 배경
• 김시습(1435~2493, 향년 58~9세)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잠시 강원도 강릉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가 다시 한성으로 돌아와서 성장하였다. 어릴 적부터 매우 명민하여 태어난 지 8개월에 글 뜻을 알았다고 하고 만 3세에 이런 시를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桃紅柳綠三春暮도 홍 유 록 삼 춘 모 복사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 삼월은 이미 저물었네.
珠貫靑針松葉露주 관 청 침 송 엽 로 푸른 침으로 구슬을 꿰니 솔잎의 이슬이네.
소문을 듣고 당시 정승인 허조가 찾아와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老)를 넣어 지어보라" 청하자,
老木開花心不老노 목 개 화 심 불 노 늙은 나무에 꽃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
라고 지어 허조를 놀라게 하였다고도 한다.
• 5세에 이미 <중용>과 <대학>을 익혔다고 하며 이에 세종이 친히 5살난 아이를 불러 시를 짓게 하였다. 시험을 맡은 박이창(朴以昌)이 병풍에 그려진 강변에 접한 정자와 배를 가리키며 지어보라 하자,
小亭舟宅何人在소 정 주 댁 하 인 재 작은 정자, 배 매인 집에는 누가 사는가?
라는 시를 썼다. 박이창의 호가 소정주(小亭舟)인데 김시습이 이를 알고 시를 지었는지 아니면 김시습을 시험한 후 박이창이 이 시를 마음에 들어해 호를 지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만약 전자라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김시습의 문재(文才)와 재치에 미루어 전자라고 짐작함에 무리가 없다.
감탄한 박이창이
童子之學 白鶴舞靑空之末동 자 지 학 백 학 무 청 공 지 말 동자의 학문이 마치 백학이 하늘 끝에서 춤추는 듯하다.
라고 스스로 시를 지은 다음 대구를 지어보라 하자 김시습은,
成王之德 黃龍飜碧海之中성 왕 지 덕 황 룡 번 벽 해 지 중 '어진 임금의 덕이 마치 황룡이 푸른 바다를 뒤엎는 듯하다.'
라고 답하여 박이창을 거듭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이에 흡족한 세종은 비단 50필을 상으로 주었는데 이 비단을 모두 홀로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였다. 과연 이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궁금했던 모양인데 '별 거 아닌 거'라는 투로 즉석에서 비단을 서로 묶어서 엄청 길게하고는 그냥 질질 끌면서 가버렸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다.『어우야담』에도 세종 앞에서 시를 지은 일과 비단을 끌고 돌아간 일화가 실려있다.
•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고 한다. 방랑 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1456년 성삼문이 극형에 처해졌을 때 한밤 중에 시체를 수습해 몰래 서울 아차고개 남쪽에 묻고 장사지냈다고 한다. 문학인으로서는 남효온, 송익필과 더불어 산림삼걸(山林三傑)로 불린다. 이는 조선 중기에 활동한 문인 남용익(南龍翼)이 『호곡시화』를 편찬하며 명명한 것이다. 많은 저술을 하기도 했는데 한국 최초의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저자이다. '금오'는 경주 남산의 봉우리 금오봉을 말하는데 금오신화를 이 산에 있던 용장사에서 스님으로서 7년 동안 머무를 때 썼기 때문이다.
• 벼슬길에 뜻이 없었는지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녕대군이 수재라고 하여 세조에게 그를 천거했으나 떠도는 승려로 살아가면서 벼슬자리를 모두 거부했다고도 한다. 하루는 억지로라도 끌고 간다며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달아나더니만 논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만든 똥통에 스스로 빠져서 "자, 이런데도 날 주상에게 데려갈 테냐? 가봐야 네놈들 목만 날아갈 텐데?"라며 비웃었고 포졸들은 미쳤다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당대에 설법으로 이름이 높아 세조가 그 설법을 듣고자 재물도 준다고 하고 어명을 어기면 참수할 것이라 협박까지 했음에도 "그러면 죽여 보시오"라며 거침없이 대들었다. 죽여봐야 설법을 못 들으니 세조가 고민 끝에 효령대군에게 부탁하여 효령대군이 손수 와서 설득하자 딱 1번 가서 세조에게 가서 설법을 했다고 한다.
• 김시습은 한명회가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라는 시를 짓자 이를 고친 개작시를 짓기도 했는데 '靑春亡社稷(청춘망사직), 白首汚江湖(백수오강호)'로 바꿔버린 것이다. 본디 '청춘부사직, 백수와강호'는 '젊어서는 사직을 보필하고 늙어서는 강호에 은거한다'는 뜻으로 사대부가 꿈꾸는 생애를 표현한다. 한명회는 '젊을 때에는 열심히 나라를 위해 일하고 늙으면 은퇴해서 유유자적해야지'라는 포부 겸 자화자찬을 담아 이 시를 쓴 것인데 김시습은 이를 '청춘망사직, 백수오강호'로 바꾸어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이 놈은 가는 곳마다 망치지 않는 게 없다')라고 대차게 깐 것이다. 한명회가 이러나 저러나 썩어빠진 정치인일 뿐이라고 대놓고 비웃은 것이다. 이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개작시를 보고 감탄했고 배를 잡고 웃으며 그 시를 읊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한명회는 노발대발하며 시를 적은 종이를 찢어 버렸다고 한다.
• 하루는 길을 가는데 신숙주가 마침 가마를 타고 가고 있기에 "이놈! 선왕의 신신당부를 어긴 이 못난 놈!"이라고 호통을 치자 신숙주는 아무 말도 없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서거정과도 우연히 만났는데 신숙주와 달리 서거정은 오래 전부터 수양대군을 모시던 사람인지라 김시습도 서거정은 호통치지 않고 정답게 이야기를 하였으나 말투는 서로를 은근히 비꼬는 비수였다고 전해진다. 후에 서거정도 그를 천거하고자 세조에게 건의했으나 결국 그도 포기했다고 한다. 그나마 세조가 죽고 벼슬을 지내기도 했으나 워낙에 떠돌아 다닌 게 오래되어서 잘 맞지도 않았다. 현실과 이론의 차이 및 온갖 부조리에 치를 떨며 오래가지 않아 때려치우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 지냈다고 한다. 생존 당시에는 야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김시습의 이름이 언급되는 시기는 김시습이 죽은 뒤 한참 뒤인 중종 시기였다. 그래서 김시습의 일화는 정사보다는 주로 야사가 출처이다.
• 이후 잠시 머리카락을 기르고 고기를 먹으며 혼인하여 대를 이으려 했으나 아내가 일찍 죽고 실의에 빠져 다시 머리를 깎고 입산했다. 그 후 떠돌아 다니다가 무량사[8]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유언으로 화장하지 말고 묻어달라고 당부한 후 사망했다. 몇 년 후 절에서 다시 파보니 시신이 살아 있는 것과 같아 사람들은 부처라 여겨 화장 후 나온 사리를 봉안했다. 사리는 부여군 무량사 부도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비바람으로 부도가 훼손되자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이후 불교계에서 사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받아들여서 2017년 9월 무량사로 되돌아갔다.
• 정조 대에 남효온과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는데 당시에 이미 자손이 끊겼다는 언급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 일생을 한마디로 말하면 '재주는 많았으나 세상이 어질지 못해 평생을 미친 것처럼 꾸며 살다 갔다.'라고 할 수 있겠다.
• 조선 전기에는 유교적
ㅊㅊㄱ 즉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선비의 자세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었으며,
'시의'와 '의리'에 따른 처신이야말로 선비의 본질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 작품의 핵심
• 갈래: 한문 산문, 논설문
• 성격: 논리적, 비판적, 교훈적, 설득적
• 제재: 선비의 은거와 출사, 올바른
ㅊㅅ 방식
• 주제: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은
ㅇㄹ과
ㅅㅇ에 따라
결정해야 하며,
ㅁㅇ나 ㅇㅇ으로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 발표: 조선 전기, 『매월당문집』 권18 수록
• 특징: 고전적 예와 성현의 말을
ㅇㅇ해
논거를 삼고,
ㄷㅈ적
사례를 통해 주장을 강화하며, 끝으로
ㅇㅅ적인
태도를 강력히 비판하며 마무리함.
📝 핵심 표현과 의미
• "의리의 당부·시의의 가부": 선비의 거취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ㄷㄹ와
때임을 강조
• 이윤·부열·태공망: 은거하다가 때를 만나 출사한
ㅅㅈ의
모범으로 제시
• 상산사호·도잠: 세상과 뜻이 맞지 않아 은거한 예시
• 이사·양웅: 출처는 달라도
ㅇㅇ을 좇아
의를 어긴 부정적 예시
• "견룡재전"·"불사왕후"·"이견대인": 『주역』을 인용해 '때와 상황에 따름'을
뒷받침
• "모모가 서시의 미소를 흉내 냄":
ㅇㅅㅈ들을
ㅍㅈ하는
비유적 표현
🎯 표현상의 특징
•
ㄴㄹㅈ
전개: 주장→근거(예시)→대조→결론→비판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구성
• 다채로운 고전 전거 인용: 『주역』, 제왕과 성현의 고사를 논거로 활용
• 긍정적 예와 부정적 예를
ㄷㅂ시켜
주장의 설득력을 높임
• ㄷㄱ와
ㅂㅂ적
표현으로 주제를 강조하며, 마지막 비유로
ㅂㅍ의
강도를 높임
🏆 주요 출제 유형
•
ㅈㅈ
파악하기
•
ㅇㅈ
추출·요약하기
•
ㄴㅇ
일치·불일치 판단하기
•
ㅍㅎ·문장의
특징 파악하기
•
ㅇㅇ·관용적
표현의 의미 해석하기
📚 수능 기출 핵심 정리
• 핵심 질문: 선비는 언제 벼슬에 나아가고 언제 물러나야 하는가?
• 정답의 핵심:
ㅇㄹ과
ㅅㅇ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 명예·이해·체면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님.
• 출제의 중심: 은거와 출사의 기준, 긍정 예와 부정 예의 구분, 인용구의 의미,
마지막 비유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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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한 공기 독서 한 숟갈: 김시습(金時習), '고금군자은현론(古今君子隱顯論)'
서술형 점수: 70 / 70
객관식 점수: 10 / 30
전체 점수는: 80 / 100 점입니다.
오답 문제 : 객관식 3,4,5,6,7,8,10,11,14,16,17,20,21,24,25,26,28,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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