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이춘풍전(李春風傳)〉전체 현대어 번역(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은)입니다.
[1] 이춘풍의 방탕한 생활과 가산 탕진
숙종 대왕 즉위 초에 인화세풍(사람들의 화목함과 세상의 풍속)이 좋아 국태민안(국가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이라. 비와 바람이 적당하게 불고 집집마다 풍족하여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 않으니,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라.
이 때 서울 다락골에 한 사람이 있으되 성은 이요, 이름은 춘풍이라. 집안 형세가 매우 넉넉하여 장안의 거부로서 다만 혈육이 춘풍뿐이라. 부모가 매양 사랑하여 금옥같이 길러 내니 인물이 옥골(옥처럼 뛰어난 용모)이요 헌헌장부(당당하고 호탕한 사내)라, 타인과 달라 못 할 것이 전혀 없더라.
그렇듯 지내다가 양친이 일시에 다 돌아가시니 춘풍이 망극하여 삼년상을 마친 후, 일가를 경계할 친척이 없어 춘풍을 경계할 사람이 없으매, 춘풍이 외입(기생집 등을 다님)하여 하는 일마다 방탕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재산 누만금을 낭비하여 없애버릴 때, 남촌 북촌의 외입쟁이들과 한가지로 휩쓸려 다니며 호강하여 밤낮으로 놀아날 적에, 모화관에서 활쏘기와 장악원 풍류 들기, 산영루에서 바둑 두기, 장기·골패·쌍륙·투전, 육자배기·사시랑이·동동이·엿방망이 놀이하기와, 아이를 보면 돈 주기, 어른을 보면 술 대접하고, 고운 얼굴과 맑은 소리, 맛좋은 일년주(일 년 된 술)며 벙거짓골 열구지탕(신선로)과 갈비찜에 날마다 푹 취하여 놀아날 적에, 기생집 기생들이 달려들어 수천 금을 순식간에 없애버리니, 천하 부자 석숭인들 그 무엇이 남겠는가.
[2] 아내 김씨의 만류와 춘풍의 궤변
티끌같이 없어지고 진흙같이 다 마른다. 전에 놀던 기생들이 나를 보면 돌아서 버린다. 춘풍이 어쩔 수 없이 제 집에 돌아와 제 처더러 하는 말이,
"‘집이 가난할 때 좋은 아내를 생각한다’고 옛글에 일렀건만, 애고 이제 어찌할꼬."
가련하다 춘풍의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시오, 내 말 들으시오. 대장부로 태어나서 문무 간에 힘을 써서 춘당대 알성과에 참가하여 계수나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청라삼(관복)을 떨쳐 입어 부모께 영화를 보이고 후세에 이름을 남겨 장부의 사업을 한다면, 집안을 망칠지라도 무엄하지는 않으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치산(재산 관리)을 그리 망치지 말고 농업에 힘써서 처자를 굶기지 말고 의식이나 호강으로 지내다가 말년에 이르러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부부가 평생토록 안락하게 지내면 그도 아니 좋겠습니까?
부귀공명 마다하고 당신이 어찌 굴어 부모의 대대로 내려온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없애고, 그 수많은 노비와 전답을 누구에게 다 넘겨주고, 처자를 돌아보지 않고 주색잡기와 투전으로 밤낮 방탕하여 저렇게 되었으니 어찌 살자고 이러시오.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주색잡기 좋아 마오. 예로부터 외입한 사람 치고 누구 하나 망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 말 잠깐 들어 보시오. 미나리골 이패두는 기생을 즐기다가 나중에 신세가 망쳐지고, 동문 밖의 오청두도 투전잡기 즐기다가 말년에 거지 되고, 남산 골목 화전이도 어릴 때 부자로서 주색잡기 즐기다가 늙어서 헛되이 죽고, 모시전 김 부자도 술 잘 먹고 허랑하기로 장안에 유명하더니 수만 금을 다 없애고 기름 장사 다니오. 이러한 일로 미루어 볼진대 주색잡기 다시는 하지 마시오."
이렇듯 만류하니 춘풍이 대답하는 말이,
"자네 내 말 들어 보게. 머슴 대실이는 술 한 잔 못 먹어도 돈 한 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머슴을 못 면하고, 탑골 복동이는 투전과 골패를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으니, 이로 볼작시면 주색잡기 하다가도 못 사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 보게. 술 잘 먹는 이태백은 앵무배(술잔)로 백년 삼만 육천 일 동안 하루 삼백 잔으로 매일 폭음하였어도 한림학사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하였어도 나중에 잘 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이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는 것은 남자의 상정이로다. 나도 이리 놀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
[3] 각서(수기)를 쓰는 춘풍과 아내의 재산 형성
이처럼 허랑방탕하고 조석거리도 대지 못할 만큼 탕진한지라, 춘풍이 어쩔 수 없이 그제야 뉘우치는 마음이 절로 나서 아내에게 사과하고 정성으로 비는 말이,
"자네 부디 노여워 마오. 자네 부디 슬퍼 마오. 내 마음 생각하니 이제야 지난 잘못을 깨달았네. 지난 일이야 어찌할 수 없다 쳐도, 가난해서 못 살겠네. 어찌하면 좋단 말고. 오늘부터 집안의 모든 일을 자네에게 맡길 것이니 자네 마음대로 관리하여 먹고 입는 걱정이나 줄이게 하소."
춘풍의 처가 하는 말이,
"부모의 유산 누만금을 주색으로 다 없애고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후에 혹시 바느질과 길쌈을 하여 돈푼이나 모을지라도 그것인들 어찌 아끼지 않겠습니까?"
춘풍이 대답하되,
"자네 말이 내 행실을 믿지 못하니, 이후로 주색잡기를 하지 않기로 각서(수기)를 써 줌세."
종이와 붓을 가져와 각서를 쓰는구나.
'모년 모월 모일 아내에게 바치는 수기라. 이 수기를 쓰는 까닭은, 외입과 방탕으로 조상의 유산 누만금을 기생과 잡기로 다 탕진하고, 이제야 지난 잘못을 뉘우치나 뉘우쳐도 소용이 없도다. 오늘 이후로는 집안의 일을 전적으로 아내 김씨에게 맡기노라. 김씨가 재산을 모은 후에는 누만금의 재산이라도 모두 김씨의 재산이요, 가장 이춘풍은 한 푼의 돈과 한 되의 곡식도 관여할 권리가 없기로 이와 같이 수기를 쓰노니, 훗날 만약 잡기에 빠져 망나니짓을 하거든 이 수기를 가지고 관가에 고발하라. 글을 마치며 가장 이춘풍.'
글을 써서 주니, 춘풍의 아내 거동 보소.
"수기 말씀이 이 수기를 가지고 관가에 고발하라 하였으나, 남편을 걸어 송사(고소)하겠습니까?"
춘풍이 이 말을 듣고 수기를 고쳐,
'또한 아내 김씨에게 바치는 수기라. 이제 이후로 만약 쓸데없는 소리를 하거든 나를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 불러도 좋으며, 이 문서로 증거를 삼으라.'
하여 주니, 김씨가 받아 함롱(장농)에 넣어 두고 이 날부터 집안을 다스린다.
바느질과 길쌈에 능란하다. 오 푼 받고 새 버선 짓기, 서 푼 받고 새 김 볼 박기, 두 푼 받고 한삼 짓기, 서 푼 받고 헌 옷 깁기, 네 돈 받고 장옷 짓기, 다섯 돈 받고 도포 만들기, 여섯 돈 받고 철릭 짓기, 일곱 돈 받고 이불 누비기, 한 냥 받고 돌찌 누비, 두 냥 받고 바지 누비, 세 냥 받고 두루마기 누비, 네 냥 받고 관복 지으며, 겨울이면 무명 짜기,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하기, 이렇게 사시사철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사오 년을 모은 돈을 장변(장대돈)이며 월수(달이장)를 놓아 수천 금을 모았구나.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고 가세가 풍족하여 부러울 것이 전혀 없다.
[4] 춘풍의 재발작과 평양 장삿길
이 때에 춘풍이 아내 덕에 의복과 관망을 갖춰 입고 좋은 음식으로 배를 두드리며 제 집 술로 매일 푹 취하는구나. 가래침 고두(침을 뱉음) 받고 곤자소니(창자 요리)가 기름지니 마음이 교만해져 예전 행실이 절로 난다.
떵떵거리고 내달아서 호조(국가 재정 담당 관청) 돈 이천 냥을 큰 이식을 붙여 얻어 내어 방물장수인 체하고 평양으로 장사하러 가려 하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이 말을 듣고 대단히 놀라 춘풍더러 하는 말이,
"여보시오 서방님, 내 말 잠깐 들어 보시오. 이십 세 전에 부모 유산 탕진하고 그 사이 오 년을 차분히 앉아 있다가 물정도 모르는 데다 평양 장사를 가지 마시오. 평양 물정 내 들었소. 번화하고 사치하며 화려한 집과 기생들의 빼어난 미모, 간드러진 노래로 교태를 부려 돈 많고 허랑한 자는 제 발로 서 있게 해 두고 옷을 벗겨 먹는다는데, 평양 물정이 이러하니 부디 장사하러 가지 마시오."
정성으로 만류하니 춘풍이 하는 말이,
"나도 또한 사람인데 이십 세 전에 집안을 망치고 원통함이 골수에 박혔으니 '천금의 재산이 다 없어져도 다시 돌아온다' 하였으니 낸들 매번 패가할까, 속속들이 다녀옴세."
춘풍 아내가 이르기를,
"지난해에 집안을 망쳐 한 푼의 돈과 한 되의 곡식도 참견하지 않을 뜻으로 '아내의 재산'이라 수기를 써서 내 함롱에 넣었거늘 그 사이 잊었는가? 먹고 입는 것을 내게 맡기고 편안히 앉아 먹고 부디 부디 가지 마시오."
춘풍이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어 어질고 착한 아내의 머리채를 비단 감듯 휘휘 칭칭 감아쥐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며,
"천리 먼 길 장삿길에 요망한 계집년이 잔말을 이리 하니 이런 변이 또 있는가?"
제 아내를 억누르고 집안 재물을 다 털어서 말에 싣고 떠날 적에 불쌍하다, 춘풍 아내가 아무리 여러 말로 말리어도 막무가내이더라.
[5] 평양 도착과 기생 추월의 유혹
이 때 춘풍이 이천오백 냥을 삯말(짐 말)에 실어 놓고 떠날 때, 좋은 말 두 바리에 갖추어 차리고 호랑이 가죽 방석을 높이 깔고 내려간다.
의기양양하게 내려갈 때 영서문 얼른 지나서 무학재 얼른 지나 평양길 내려갈 때 청석골에 다다르니, 정신이 시원하여 좌우 산천을 바라보니 이 때는 춘삼월 좋은 시절이라. 고을고을마다 꽃은 날려 푸른 물결에 던져지고 수양버들 천만 가지에는 황앵(거머리/꾀꼬리)이 날아들고 온갖 산수를 구경한다. 옛 도읍의 벽사월에 창오원 중 늙은 고목, 주유낙일 절벽 사이에 임을 그리워하는 상사나무, 옥조중랑 축분춘아 이월 달의 계수나무, 층암절벽에 펑퍼진 반송나무, 늘어진 버드나무는 봄바람에 흥을 겨워 우쭐우쭐 춤을 춘다.
또 한 편을 바라보니 무슨 짐승이 놀던가. 뻐꾹새랑 창경새는 피는 꽃을 따려 하고 뻐꾹새는 봄을 촉구하고 바람을 타는 가는 말은 걸음을 재촉하고, 옥동도화 만수춘은 가지가지 봄빛이라. 피는 꽃 푸른 잎은 산책로를 가리고 나는 나비와 우는 새는 봄철을 희롱한다.
동선령을 바삐 넘어 황주 병영 구경하고, 중화를 지나 평양을 바라보고 형제교를 얼른 지나 십리장림을 지나 대동강에 다다라 모란봉을 쳐다보니 그 아래 부벽루가 둘러 있고 풍경도 좋구나. 대동문 연광정, 제일강산이 여기로다. 기자와 단군 이천 년의 보통문이 전해 오도다. 정자도 좋거니와 영명사 극히 좋다. 성내에 들어서니 인가도 번성하고 풍경도 번화하다.
춘풍의 거동 보소. 최성루 돌아들어 좌우 산천 구경하고 또 한 편을 바라보니 옛 마음이 절로 난다. 이런 변이 또 있는가. 기생집 앞을 썩 지나서 객사 동편에 주인을 정하고, 열두 바리 실어 온 돈을 차례로 들여놓고 삼사 일 유숙하며 물정을 살피더니, 하루는 난간에 의지하여 한 집을 바라보니 집치레도 좋거니와 저 집 주인 거동 보소. 뛰어난 가인이라. 얼굴도 으뜸이요, 노래도 명창이요, 나이는 십오 세라. 성 안의 호걸들과 팔도의 소년 한량들이 한번 보면 수삼백 석을 쓰기를 물 쓰듯 하는구나.
이 때 서울 대상인 이춘풍이 수천 냥을 싣고 와서 뒷집에 주인을 정했다는 말을 듣고, 추월이 넌지시 춘풍을 홀리려고 사창(기생 방의 창문)을 반쯤 열고 은근한 교태로 녹의홍상(초록 저고리와 다홍치마)을 다시 입고 단정히 앉은 모양을 춘풍이 얼른 보니, 얼굴과 태도가 창공의 밝은 달 같고, 모란꽃에 아침 이슬이 반쯤 핀 형상이요, 그 절묘한 맵시는 해당화가 그늘 속의 그림이요, 달나라의 항아로다.
천석 같은 태도는 앵두꽃이 무르녹고 아미산에 뜬 반달이 맑은 강에 비침 같고 서시가 다시 태어나고 양귀비가 다시 온 듯, 기생집에 홀로 앉아 오동나무 거문고를 무릎 위에 얹어 놓고, 탁문군을 꾀어내던 사마상여의 봉황곡을 둥둥 타는 소리에 춘풍의 심신이 황홀하여 미친 마음이 절로 난다. 제 본디 계집이라 하면 화약 한 섬을 지고 모닥불에 덤벼드는 격이라, 일신의 정신이 있는 대로 모두 그리로 간다.
| 일신의 정신 있는 대로 모다 그리간다. 추월에게 넋을 잃은 춘풍. <이춘풍전> |
[6] 추월에게 미혹되어 거지 신세가 된 춘풍
춘풍의 거동 보소. 좋은 의복을 입고 꿀밥 찾듯, 배고플 때 스님 찾듯, 삼국 풍진 어지러울 때 유황숙이 와룡선생 찾아가듯, 서왕모 요지연에 주목왕 찾아가듯, 꾀꼬리가 버드나무 찾아가듯, 비둘기와 나비가 꽃밭을 찾아가듯, 맹상군의 갈지자 걸음으로 중문 안에 들어서니 추월의 거동 보소.
춘풍이 오는 모양을 얼른 보고 고운 얼굴을 번쩍 들어 뜰 아래 내려서서 춘풍의 소매를 휘어잡고 난간에 올라서서 좌우를 살펴보니 집 치레도 황홀하다. 사면팔자 입구(口) 자로 여섯 칸 대청 전후 퇴로 이층 난간이 맵시 있다.
방 안을 살펴보니 각장 장판과 소란 반자, 국화 새긴 완자창과 산수병풍의 미인도가 아름답다. 수묵화로 대나무 잎을 그려 벽창문에 붙여 두고 원앙금침 잣베개를 지리장에 개어 놓고, 벽의 주련을 둘러보니 동중서의 책문이며 제갈량의 출사표며, 적벽부와 양양가를 구절마다 붙였구나. 놋촛대와 광명두리가 여기저기 놓여 있고 요강과 재떨이며 청동화로 수박화로 삼층 화류장은 드문드문 벌여 놓고, 벼루상의 장목비며 화문석에 옷걸이, 좋은 의상 내려 두고 추월의 거동 보소.
눈길을 반만 들어 영접하여 앉은 모양 아리땁고, 고운 태도로 눈섭을 다스리고, 삼단 같은 머리채를 흘려 빗겨 금봉채로 단장하고 의복 치장을 볼작시면, 비단 장바지, 무명 단속곳, 세백 너른바지, 깨끼적삼, 남대단 홋단치마 잔살 잡아 떨쳐 입고, 노리개인들 범연할까. 이궁전 인물향과 밀화 불수 금도끼를 줄줄이 차고 겹버선에 당혜를 제법 신고, 입술을 반쯤 열어 웃는 모양은 봄날 반쯤 핀 홍련이다.
섬섬옥수로 담배를 설설 펴서 담아 청동화로 숯불에 불을 붙여 춘풍 앞에 드릴 때 향내가 진동하니 춘풍이 받아 들고 하는 말이,
"나도 경성에서 자라 기생을 찾아다니다가 여기 내려와 객회가 적막하더니, 오늘 밤 창가에서 자게 되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하니 추월이 잠깐 웃고 여쭈오되,
"서울에서 평안히 오셨습니까? 뒷집에 계시면서 어이 그리 더디 오셨습니까."
이 말 저 말 다 버리고 추월이 분부하여 주찬을 차려 올릴 때, 국화 새긴 통영반에 주전자 들여놓고, 조로록 엮은 홍합과 생선찜, 사탕, 귤병, 당대추며, 반달 같은 계피떡과 먹기 좋은 꿀합떡과 화전을 고여 놓고, 생꿩과 영계찜을 곁들이고, 큰 접시에 전복을 갖추어 곁들이고, 겨자 초장 생청을 틈에 끼워 놓고, 생율, 곶감, 은행, 대추, 포도, 머루, 다래, 유자, 석류, 능금, 참외, 수박을 갖추어 왔구나.
술병을 볼작시면 거북병, 자라병, 오리병, 왜화병, 당화병 등 여러 병을 갖추어 벌여 놓고, 술을 볼작시면 포도주, 국화주, 과하주, 백일주, 황소주, 감홍로, 연엽주, 송엽주를 갖추어 놓았는데, 앵무배 술잔에 섬섬옥수로 졸졸 가득 부어 춘풍에게 드리거늘, 춘풍이 하는 말이,
"평양이 소강남이라 하니 권주가나 들어 보세."
추월이 입을 반쯤 열어 권주가를 부를 적에,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살아서도 백 년을 채우기 어려우니 권할 때 잡으시오. 일생 백 년 못 살 인생 아니 놀고 어이할까. 이 술은 한무제의 승로반에 이슬을 받은 것이니 잡으시오. 세상살이 초로 같은 우리 인생 한 번 돌아가면 누라 한 번 먹자 하리. 살았을 때 먹읍시다."
춘풍이 받아 먹고 흥에 겨워 노는구나.
"추월 춘풍 연분 맺어 한가지로 놀아 볼까."
추월이 대답하되,
"봄날 춘풍도 좋거니와 가을 추월도 밝았으니 진실로 그럴 양이면 추월 춘풍 연분 맺어 놀아 볼까."
춘풍이 추월을 두고 시를 읊었으되,
"달 밝고 바람 시원한 밤에 나는 춘풍 너는 추월 우리들이 배필 되면 천지가 변한들 풍월이야 변할소냐."
추월이 대답하되,
"서방님은 달 자 운을 달았으니 나는 바람 자 운을 달아 볼까. 산과 강에 바람 불어도 추월 춘풍 배필 되어 대동강이 마르도록 추월이야 변하겠습니까. 좋구나 청풍명월 야삼경에 우리 둘의 마음이 통하였으니 참으로 좋은 연분이로다."
춘풍이 크게 기뻐하여 장사에 뜻이 없고 이 날부터 이천오백 냥을 마음대로 쓰는구나. 날마다 술에 취해 주야로 노닐거늘 추월이는 수천 냥을 홀리려고 교태하여 이른 말이,
"비단 저고리감 사 주오. 노리개 해 주오. 주전자, 화로, 양푼, 대야, 유기 반상 사 주오. 백통 담뱃대 사 주오. 문어, 전복 안주하게 사 주오. 좋은 쌀 밥쌀하게 사 주오."
온가지로 떼를 쓰니 허랑한 이춘풍이 조금이라도 사양할까. 수천여 냥 돈을 내어 주니 수천 냥 돈이 오래 가겠는가. 일 년이 못 되어 주머니가 비었구나.
추월의 거동 보소. 춘풍의 재물을 빼앗고 괄시하여 내쫓으니 춘풍의 슬픈 거동 가련하다.
거울을 홱 던지고 구박할 때 성 안팎 한량들에게 의논하여 "어디로 가려시오? 노자가 부족하면 한 돈이나 보태 줄 테니 바삐 나가라" 재촉하니 춘풍의 거동 보소. 분한 마음 폭발하여 추월더러 하는 말이,
"우리 둘이 만나 깊이 맹세하여 대동강이 마르도록 떠나가지 말자더니 이제 이 말이 웬 말인가."
추월이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을 바꾸어 하는 말이,
"이 사람아, 청루 물정을 몰랐던가? 평양 기생 추월이 성품을 몰랐던가? 자네가 가져온 돈 혼자 먹었는가?"
이같이 구박하여 어서 가라 하니 춘풍이 분한 중에 탄식하며 이리저리 생각하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집으로 가자 하니 부끄럽고, 호조 돈 이천 냥을 내어다가 한 푼 없이 돌아가면 감옥에 가두고 칠 테니 죽을 것이라 서울로도 못 가겠고, 먼 길을 가자 하니 노자 한 푼 없으니 그도 못 하겠다. 이 일을 어찌하리. 대동강 물에 빠져 죽자 하니 차마 못 하겠고, 수건으로 목을 매어 죽자 하니 이도 차마 못 하겠네. 답답한 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고.
평양성 내 거지가 되어 구걸하려 하니 이놈 저놈 꾸짖으니 그것도 못 하겠도다. 어디로 가 간단 말인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추월 앞에 나가 앉아 구걸하며 비는 말이,
"추월아 추월아, 내 말 들어라. 날 살려라 날 살려라. 내가 자네 집에 도로 있어 물이나 긷고 아궁이 불이나 땔 테니 있게 해 다오."
추월이 거동 보소. 눈을 흘겨보면서,
"여보소, 이 사람아. 전 행실을 못 고치고 반말을 하려거든 내 집 다시 오지 마소."
이렇듯이 구박하니 춘풍이 어쩔 수 없이 '아가씨'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존댓말이 저절로 나온다.
춘풍이 이 날부터 추월의 집 종노릇을 하는 일, 산 것만 못하니 가련하다. 누더기 차림으로 이리저리 다닐 때 종로의 상거지라. 아침저녁 먹는 거동을 보면 이 빠진 헌 사발에 누릉지와 토장덩이가 제격이라. 수저도 없이 뜰 아래나 부엌에서 먹는 거동, 제 신세를 생각하니 목이 메어 못 먹겠네.
주야로 한량들은 추월의 집으로 모여와 온갖 희롱을 하면서 좋은 술과 안주로 한창 놀 적에 춘풍의 거동 보소. 뜰 아래서 방 안을 엿보니 눈에는 풍년이요 입에는 흉년이라. 제 신세를 생각하고 매화타령을 부른다.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피엄즉도 하다마는 백설이 분분하니 필지 말지, 어화 세상사 가소롭다."
이 때 방 안의 한량들이 노래를 듣고 의심하니 추월이 무색하여 하는 말이,
"내 집에서 사환하는 놈이 서울 이춘풍이라 하는 놈인데 소리를 하니 신경 쓰지 마소서."
한량들이 불쌍하다 하며 술 한 잔을 가득 부어 주니 춘풍이 목이 말라 받아 먹으니 가련하더라.
[7] 아내 김씨의 남장과 암행 남하
각설, 이 때 춘풍의 처는 남편과 이별하고 밤낮으로 탄식하며 장사에서 남김을 얻어 평안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더니, 춘풍은 오지 않고 소문이 들리기를 "이춘풍이 평양 가 기생 추월에게 빠져 재물을 다 없애고 추월의 집 사환이 되었다" 함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되,
"슬프다, 가장을 만나 평생 고생이로구나. 박명한 내 팔자 목을 매어 죽고 싶도다."
이를 갈며 하는 말이,
"평양을 찾아가 추월의 머리채를 잡고 춘풍과 함께 목 매어 죽으리라."
하다가 도로 고쳐 생각하되,
"이리도 못 하리라. 내 가장을 서울로 데려다가 살려 내야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구나."
이렇듯이 지내는데 뒷집 참판 댁의 소년 급제한 맏아들이 최근 평양 감사로 부임한다는 말을 듣고 춘풍의 처가 계교를 생각한다. 그 댁 대부인이 계신 것을 알고 침재(바느질) 품을 팔아 얻은 돈으로 대부인의 진지 상을 정성껏 차려 드리니 대부인이 매일 기특하게 여겨 사랑하더라.
하루는 참판 영감이 평양 감사가 되매, 춘풍의 처가 대부인께 아뢰기를,
"소녀에게 오래비가 있사오니 비장(감사의 비서관) 한 자리를 주십시오."
하니 대부인이 감사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는다. 춘풍의 처는 없는 오래비가 있다 하고 자신이 직접 가려고 여자 옷을 벗고 남자 의복으로 치장한다.
망건과 탕건을 쓰고 은귀영자를 달고 비단 옷과 두루마기를 입고 장도를 차고 부채를 쥐고 흐늘흐늘 걸어가니 황홀한 귀남자라.
감사 댁에 들어가 대부인께 복지하여 여쭈오되,
"춘풍의 처 문안드리나이다."
부인이 놀라 "남복은 무슨 일인고?" 물으니 비장이 여쭈오되,
"지아비가 평양 가 추월에게 호조 돈을 다 탕진하고 종노릇을 한다 하옵기에 사또 덕택으로 비장이 되어 내려가 추월도 응징하고 호조 돈도 거두고 지아비도 데려오고자 함이니 마누랏님 덕택입니다."
대부인이 크게 웃으며 "네 소원대로 하여 주마" 하고 감사도 이 사실을 알고 기특하게 여겨 비밀로 하라 하니, 다른 사람들은 "회계 비장이 수염이 없는 것이 흠이로다" 하며 칭찬하더라.
다음 날 평양으로 하강할 때 그 위엄이 엄숙하고 화려하더라.
[8] 평양 도착과 추월·춘풍 응징
평양에 도임하여 선화당에 좌정하고 기생들이 현신한 후 하루는 감사가 조롱하되 "자네는 어이하여 독수공방하는가?" 하니 비장이 여쭈오되 "색에 뜻이 없나이다" 하니 감사가 더욱 기특히 여기더라.
이 때 회계 비장이 춘풍과 추월의 일을 염탐하여 자세히 듣고, 하루는 비장이 추월의 집을 찾아가 중문에 들어가니, 물통을 진 춘풍 저 놈의 형용이 참혹하고 가련하다. 봉두난발에 누더기를 얽어 입고 앉은 것이 제 서방인 줄 알았으되 춘풍이야 제 아내인 줄 어찌 알랴.
비장이 슬프고 분한 마음을 누르고 방에 들어가니 간사한 추월이 비장을 홀리려 상을 차려 오거늘, 비장이 먹는 체하다가 사환하는 걸인(춘풍)에게 주며,
"불쌍하다, 네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느냐?"
춘풍이 엎드려 차담상을 받으며 은혜에 감사해하더라.
비장이 처소에 돌아와 수일 후에 사령을 불러 춘풍을 잡아들여 형틀에 매고,
"네가 이춘풍이냐? 막중한 호조 돈 수천 냥을 사오 년이 되도록 내지 않으니 네 돈을 어디다 없앴느냐? 매우 치라!"
분부하여 십여 대를 치니 다리에 피가 낭자하거늘 차마 더 치지 못하고 물으니
춘풍이 "추월과 놀며 다 없애고 한 푼도 남지 않았나이다" 하거늘, 비장이 이를 갈며 추월을 바삐 잡아들여 형틀에 매고 매질을 하며,
"호조 돈 오천 냥을 지체 말고 바치라!"
호령하니 추월이 질겁하여 죽기를 면하고자 "십 일 만에 오천 냥을 바치리이다" 하고 다짐을 올린다. 비장이 춘풍에게 "오천 냥을 받아가지고 서울로 올라오라" 하고 먼저 서울로 떠난다.
비장이 상급으로 받은 돈을 환전 부쳐 놓고 집에 돌아와 남복을 벗고 춘풍이 오기를 기다린다.
[9] 서울 복귀와 춘풍의 개과천선
춘풍이 비장 덕에 돈 오천 냥을 받아 실어 놓고 의복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말을 타고 서울 제 집에 찾아오니, 춘풍의 처가 문밖에 나와 맞아 준다.
춘풍이 돈 이십 바리를 들여놓고 장사에서 남긴 듯이 의기양양해하자, 아내가 술상을 차려 오니 저 잡놈의 거동 보소. 없던 교태를 부리며 아내를 꾸짖으되,
"안주도 좋지 않고 술맛도 없구나. 평양서는 좋은 안주로 매일 호강하였더니 집에 오니 온갖 것이 어설프다. 평양으로 다시 내려가 작은집(추월)과 살리라."
하며 젓가락을 던지고 반찬 투정을 부린다.
춘풍의 처가 춘풍을 속이려고 상을 물려 놓고 황혼에 밖에 나가 다시 비장 옷을 입고 담뱃대를 물고 들어와 기침을 하며,
"춘풍아, 왔느냐?"
춘풍이 자세히 보니 평양에서 돈을 받아 주던 회계 비장이라! 황겁하여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절을 하며 황송해한다.
비장이 방에 들어앉아 춘풍을 들어오라 하여,
"그 때 맞던 매가 아프더냐?"
물으니 춘풍이 "그런 매는 상이로소이다" 하더라. 비장이 술상을 오라 하여 춘풍에게 아내를 불러오라 하니 춘풍이 아내를 찾지 못해 제 손으로 술상을 들여온다. 비장이 춘풍에게,
"네 평양 추월의 집에서 헌 누더기에 깨진 사발로 누릉지 먹던 일을 생각하라."
하고 갈분을 쑤어오라 시키니 춘풍이 부엌에서 죽을 쑤어 올린다. 비장이 죽을 조금 먹다가 춘풍에게 주며 "추월의 집에서 숟가락도 없이 먹던 생각을 하고 먹으라" 하니 춘풍이 아내가 밖에서 들을까 민망해하며 받아 먹는다.
비장이 "밤이 깊었으니 자고 가리라" 하고 갓과 망건을 벗고 웃옷을 벗고 일어서니 완연한 제 계집이라! 춘풍이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분명한 제 아내라! 춘풍이 어이없이 앉았으니 아내가 달려들며,
"여보시오, 아직도 나를 모르시오?"
춘풍이 그제야 깨닫고 손을 잡으며,
"이것이 웬일인가! 평양 비장이 내 아내라니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부부의 정을 다시 나누니 은근함이 비할 데 없더라. 춘풍이 "그 때 나를 형틀에 매고 매를 칠 때 마음이 상쾌하던가?" 물으니 아내가 웃으며,
"말린다고 때리고 만만히 여겨 거지 꼴이 되더니, 그 때 맞던 매가 깨소금이오."
하더라. 내외가 서로 웃고 춘풍이 마침내 개과천선하여 주색잡기를 전폐하고 가업에 힘써 집안이 넉넉해지고 자손을 낳고 평생 화목하게 살았으니, 세상 사람들이 춘풍의 아내를 여중호걸(女中豪傑)이라 칭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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